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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Jul 30. 2023

W2. 에든버러 일기 “우리는 가난하지만 행복해”

날씨와 자유로움

신기하다. 날씨도 생활 방식도 완전히 다른 곳에 도착해서는 새로운 것들에 빠르게 적응이 되어간다. 매일매일 바람과 갑작스러운 비와 사투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얼굴을 철썩철썩 내리치는 바람(주로 비바람)을 맞고 있자면 아침에 내가 왜 머리를 곱게 빗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예측불가능한 날씨이니만큼 다양한 길이와 두께의 옷들로 레이어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반팔이나 긴팔티를 베이스로 입고, 그 위에 가디건이나 후드티를 입고, 그 위에 레인재킷을 입는 식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해가 나오면 후딱 벗어던지고, 다시 추워지면 또 후딱 다시 겹쳐 입고 꽁꽁 싸맬 줄 알게 되었다.


같은 날씨에도 사람들은 완전히 다르게 입는다. 분명 오들오들할 만큼 추운데, 길에는 나시를 입은 사람과 한겨울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함께 지나간다. 아침에 주룩주룩 비가 왔는데, 반팔에 반바지로 비를 맞으면서 러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산을 쓰는 사람들도 반반이다. 쓰는 사람들만큼이나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나가기 전에 오늘 사람들은 무엇을 입었나를 보고 날씨를 확인하던 습관은 여기서는 소용이 없게 되었다. 날씨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느껴지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인 것이구나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춥고 우중충한 날이, 누군가에게는 시원하고 상쾌한 날일 수도 있다. 이렇게나 다양하게 입은 사람들 앞에서 나는 왠지 자유로움을 느꼈다. 내 환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반응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동네 펍


에든버러의 삶에 적응하는 첫 번째 일은 집 근처에 좋은 펍을 발견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펍이라는 공간은 이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약속잡지 않고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 모여 한잔 하는 동네 사랑방이기도 하고, 하루의 끝에서 조용하게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조용한 개인적인 공간이 되기도 하고, 친구들과 만나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면서 편하게 캐치업을 하는 공간도 된다.



럭키하게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딱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다. 너무 번잡스럽지 않고, 맛있는 스낵이 있고, 맥주만큼이나 다양한 와인이 있고, 편한 의자가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걸 갖춘 곳이었다. 무엇보다 혼자가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혼자 와서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혹은 벽에 걸린 티비의 축구 경기를 보면서 조용히 맥주를 한잔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칩스이다. 감자를 두툼하게 썰어서 튀겼는데, 평소에 튀김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반할 맛이었다.


다른 삶


도착하고 나서 아빠에게 안부전화를 했는데, 본인의 유럽여행기를 들려주었다. 2주간의 발칸반도 여행에서 소박하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사람이었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왜냐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시간이 걸리고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거니까. 우리 세대는 그런 개념이 없었지. 그냥 무조건 열심히 일하고, 아껴 쓰고, 돈을 모으면서 달려가는 거, 그게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


아빠는 나에게 다른 삶을 잘 살피고 구경하다 오라고 했다. 그 안에 니가 찾아 헤매는 답이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의미 있는 경험이지 않겠니,라고 평소의 아빠와는 다른 굉장히 모던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것과 비슷하게 지금 읽고 있는 스코틀랜드 작가의 책에서 주인공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행복해. 행복하다는 건 중요한 거야.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낄 땐 감당하지 못할 것이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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