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필드 Sheffield에 볼일이 있어서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다.
이 도시의 첫인상은 러프함,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오래된 공장 건물이 트렌디한 가구점이나 카페로 변신하고 있었다. 털털한 공업도시의 느낌이라 모나지도 않지만,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수려하게 아름답지는 않은. 하지만 좋은 카페와 브런치 플레이스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커피도 음식도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었다.
도시의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셰필드 대학이 있는데, 거기엔 중국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심지어 대학가 근처 한 스트릿은 중국식품점과 식당으로만 가득 채워져서 차이나 타운의 느낌이 났다. 그 외의 지역에서도 일반 영국 식당의 메뉴 옆에는 중국어로 된 메뉴를 걸어두고 있어서, 차이나 머니를 환영하는 느낌을 받았다.
볼일을 끝낸 다음날, 돌아가기 전 아침에 잠깐 근교에서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셰필드에는 영국 국립공원인 피크 디스트릭트 Peak District가 있다.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도심에서 기차로 30분이면 하이킹 트레일의 시작점에 도착할 수 있다. 월요일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조용하고 평온한 숲 속을 걸을 수 있었다. 영국의 여름은 산뜻하게 시원한 공기를 갖고 있다. 너무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은 산뜻함. 영국의 박물관도, 빅토리안 건물도, 유명인과 예술가들이 거쳐간 곳의 블루 플래그도 다 좋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이런 산뜻한 공기를 맡으며 걷거나, 잔디에 누워있는 일이다.
영국 시골의 삶은 이런 것이었을까, 하워즈 엔드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머리가 복잡한 주인공은 종종 이렇게 나와서 인적이 드문 숲길을 한참을 걷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고는 며칠을 앓고는 했는데. 산책은 집안의 삶이 전부인 여자들의 삶에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기도 했고, 유일한 운동시간이기도 했고, 진지한 사색의 시간이었다가, 소설 엠마처럼 마을 가십의 시간이기도 했다.
세 시간 정도의 하이킹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근처의 서점을 들렀다. 주인인듯한 남자가 따뜻하게 맞아주는 작은 공간이었다. 제너럴 하게 다 갖추지 않고 지극히 취향을 담고 있는 듯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컨템퍼러리 소설과 프로그레시브 한 논픽션, 그리고 영문으로 번역된 글로벌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는데 일본작가들의 책이 특히 많았다. 눈여겨보고 있었던 호크니의 인터뷰집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Spring cannot be cancelled>을 샀다.
이 책은 2020년부터 2년간 그의 친구이자 미술평론가인 마틴 게이퍼드와의 대담과 이메일 서신이 담겨있다.
호크니는 건강한 생활보다는 좋은 삶을 믿는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풍요로운 삶은 온전한 의미에서 삶을 즐기는 것, 즉 주변 세계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경험하고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 이드라 섬을 여행하면서 읽었던 대니얼 클라인의 <Travels with Epicurus>이 언급되어서 반가웠다.
대니얼 클라인의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이라는 책에서 클라인은 그리스의 고요한 섬 이드라에 살면서 시간과 노화에 대해 고찰한다. 70대인 작가는 필사적으로 젊음을 잃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나이 듦을 정당하게 인생의 중요한 한 국면으로, 평온함 안에서 성찰하는 시기로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크니는 그의 견해에 깊이 동의했다.
"그리스 노인들은 와인과 담배를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시간은 유동적이고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죠."
사랑스러운 그림들도 잔뜩 들어있는 데다가, 그의 작업, 예술과 삶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에딘버러로 돌아오는 기차에 올랐다.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벌써 그리워진다. 아직은 친해지지 않은 내 집을 그리워하는 이 마음을 신기해하면서 짧은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