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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Aug 25. 2023

난이도 최상의 가족여행


인터넷에서 <효도여행에서 부모님 10계명 금지어>라는 제목의 글을 봤다.


1. 아직 멀었냐

2. 음식이 달다

3. 음식이 짜다

4. 겨우 이거 보러 왔냐

5. 조식이 이게 다냐

6. 돈 아깝다

7. 이 돈이면 집에서 해먹는 게 낫다

8. 이거 무슨 맛을 먹냐

9. 이거 한국 돈으로 얼마냐

10. 물이 제일 맛있다


여기에 달린 댓글에 하나 더 추가된 것으로 “무슨 말을 못하게 한다”가 있었다.


한참을 웃다가,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누구나 부모님 모시고 하는 여행은 버겁고 힘들구나 싶어서. 우리는 미국에 사는 시부모님과 1-2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사리가 나올 것 같은’ 인내심 한계치를 맛보고서야 끝이 난다. 그러고 나면 늘 몸살을 앓곤 했다.


이렇게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늘 문제를 나에게서 찾았다. 내가 성격이 모나서 그룹 여행이 안 맞는 건가, 내가 이기적이라서 여행이라는 시간 동안 부모님에게 맞추고 배려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나. 평소에는 시부모님이 정말 편하고,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그래도 내 애정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하고도 생각했다.


이 글을 보고 나서 누구나 그렇다는 걸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 본인의 성향이 어떻든,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떻든 부모님 모시고 하는 여행은 결국 다 힘든 거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올해는 난이도가 한층 더 올라갔다. 2주간의 여행, 거기에 부모님에 더해 시누이+조카들까지 더해진 조합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2주간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도 위험한 일이다. 매일매일 합을 맞춰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건, 게다가 그것이 7세에서 80세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가족이라는 복잡 미묘한 관계로 엮인 사람들이라면, 뭐 말할 것 없이 이건 난이도 최상이다.


서로 잘 지내고 싶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여행을 계획해 놓고, 함께 하는 여행은 왜 쉽지가 않을까.


이번 여행에서 생각했던 건 누군가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책임진다는 건 참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다. 원래 스스로의 생활반경에서 독립적으로 삶을 살던 사람들이 여행지에 모여 소수의 인솔자에게 모든 걸 기댄다. 그런 상황이 자식들에게도, 또 부모에게도 버거운 일로 다가온다.


내 기준의 편안함과 내 방식의 즐거움을 찾아서 살았던 사람들은 여행 주최자가 만들어놓은 상황에 당황스럽고 불편할 때도 있을 수밖에 없고(아직 멀었냐, 음식이 달다/짜다/비싸다 등등), 이런 변수,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여행을 준비한 사람은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실망스럽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과 그 순간에 플랜 B, 플랜 C를 머릿속으로 준비하면서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사람의 입장의 차이도 있다.


여행이 길어지면 서로에게 지치고 짜증난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갖고 있어서 안전하던 우리의 관계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정돈된 말이 오가는 배려하는 모습이고 싶지만, 현실은 실수로 생각이 짧은 말을 해서 상대를 불편하게 하기도 하고, 배가 고플 때 신경이 곤두선 상태를 들켜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뭉클한 순간도 있었다. 어느 날 일정을 마치고 집에 와서 남편과 시아버지 셋이서 집 앞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포장해서 집에서 다 같이 먹을 예정이었다. 식당에 도착했더니 주문이 밀려서 1시간쯤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다들 배고프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주말 저녁이라 다른 식당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아서 결국 주문을 하고서는 기다리는 동안 옆에 있는 펍에 갔다.


일주일쯤 지나가던 시점이라 시아버지는 시차적응도 되고, 동네에도 익숙해져서인지 경쾌하고 즐거워 보였다. 와인 한잔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함박웃음을 지으며 잔뜩 신이 난 표정의 시아버지를 보는데 순간, 뭔가 마음이 뭉클했다. 문득 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그에게 이런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순간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간다.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의 파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던 그런 신기한 경험. 이런 작고 사적인 순간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 결국 2주가 지나고 여행은 끝이 났다. 우리는 모든 일정을 해냈고, 마지막에는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리며 공항 배웅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게스트가 떠나고 드디어 남편과 둘만이 남은 고요한 집에 누워 천장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전쟁에서 공을 세운건 아니지만, 세계의 기아를 끝낸 것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암튼 우리 꽤나 대단한 일을 해낸 건 분명해. “


가족여행을 리드한다는 이 힘든 일은, 여행 중에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기에 여행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점에서 고생을 하고도 인정을 못 받는 일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힘든 마음을 아는 우리끼리 서로 등을 두드려주기로 한다.


즐거운 순간도, 참을 인자를 수없이 그리던 순간도 이제는 다 지나갔다. 모두들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고, 행복한 얼굴을 한 우리들의 사진들이 남았고, 다음에 만나면 “우리 그때 말이야-“하면서 곱씹을 추억이 생겼다. 


좋을 때만 함께한 게 아니라 고집스럽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에도 함께했던 관계는 조금 다르다. 그저 알고 지낸다는 느낌을 넘어서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난이도 최상의 가족 여행이 남긴 500여 장의 사진과 함께한 식사들, 수많은 밤의 대화들을 거쳐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애틋한 사이가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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