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수영과 스웨덴식 사우나
호스트인 J가 우리에게 아침을 뭘 먹을지 물어본다. 아침에 아이들이 와플 메이커로 와플을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해서 몇 개 구웠다며 먹을지 묻는다. 와플 두 조각 위에 허니와 누텔라를 바르고 과일을 잔뜩 올려서 내주었다. 제철을 맞은 블루베리, 라즈베리, 딸기가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복숭아를 넣은 요거트볼을 곁들여 먹었다.
오후에는 비소식이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 수영을 하러 가기로 했다. 집 앞에 있는 호수에 갔다. 몇 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처음으로 차디찬 발틱해의 바닷물을 경험했었다. 물에 발을 담그니 온몸이 찌릿할 만큼 차갑다. 비치 타월을 여러 군데 늘어놓고, 잠깐 나온 햇살을 즐겼다. 눈을 감고 누워 물 흐르는 소리와 한 번씩 지나가는 모터보트의 소리를 들었다.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해서 사우나를 들어갔다. 물가에 위치한 스웨덴식 건식 사우나는 작고 귀여웠다. 옹기종기 네 명이 앉아 뜨끈한 스팀에 몸을 녹였다. 아아아-너무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기분 좋은 따끈따끈함이었다.
물가에서 아이들은 앞으로 또 뒤로 돌며 다이빙을 하면서 그간 갈고닦은 수영 스킬을 보여주고, 우리는 이런 조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이런 해맑은 밝은 에너지가 늘 함께한다.
함께한 사람들
J의 부모님을 만났다. J의 엄마는 J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아마도 70대 초중반 정도인 그녀는 우아하다. 심지가 있지만, 유하다. 딸과 손주들을 살갑게 돌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그들에게 기대어있는 것도 같다. 타인에게 서비스를 베푸는 일이 자연스럽고 그걸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와인을 따라 줄 때, 무언가를 알려줄 때, 부드럽게 다가와서 무언가를 해주고는 우아하게 돌아선다. 구름처럼 포근한 그녀와 잠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녀의 존재가 떠나고 나서도 잔상이 남는다.
스튜어디어스였다가 변호사로 일했고, 스웨덴에서 자랐지만 20대부터는 미국에서 살았던 그녀의 인생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인생의 어떤 지점이 그녀만의 고유한 다정하고, 단단하면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에 반해 그녀의 남편은 조금 더 알기 쉬운 사람이다. 성공한 변호사이고 돈을 많이 벌었고, 인생에서 크게 넘어지거나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는 유능한 사람이다. 클린턴 가처럼 유명인사들과 사교적인 관계를 갖고 있고, 그런 류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자신감과 삶에 대한 만족감이 느껴진다.
그런 그에게 결여된 것을 찾자면, 일 중독이라는 점이다. 여든이 된 지금도 변호 케이스를 받아서 변호사로서 일을 하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는 아니고, 그저 일을 하는 삶 이외의 다른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인 것 같다. 그의 아내는 그는 70이 되던 해부터, 이번 케이스가 내 마지막이 될 거야. 그다음엔 정말 은퇴해야지,라고 말을 하면서도 자꾸만 번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완전히 일을 그만두고 그저 나 자신으로만 존재하는 삶을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일을 하고 있는 유능한 자신을 사랑하기는 더 쉬우니까 말이다.
나는 J도 어렵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더 어렵다. 사회에서 윗계층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지만, 종종은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쉽게 동정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디너 게스트가 되기
(ft. 스웨덴에서 건배하는 법)
물놀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저녁을 준비하는 모녀 사이를 오가며, 별 도움도 못 되는 사이에 저녁이 금방 완성되었다. 이탈리안 저녁이었다. 토마토+바질 부르세따에, 볼로냐 스파게티, 샐러드, 그리고 구운 야채가 나왔다. 맛있는 레드와인을 곁들여 먹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어른들은 치즈보드와 와인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했다. 유럽의 왕족들, 클레오 파트라, 트럼프, 미국 정당제, 칭기즈칸과 몽골의 역사(누군가가 칭기즈칸의 전기를 읽고 있었다)를 오가며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의 삶의 저변보다 폭넓게 읽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좋은 디너 게스트란 어떤 주제에 대해서 흥미로운 의견을 낼 줄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
스웨덴에서의 치즈 보드는 진저 쿠키에 고르곤 졸라 치즈를 얹어 먹는다. 달콤한 진저쿠키에 크리미하고 꼬릿한 고르곤 졸라 치즈가 더해지니 환상적인 맛을 낸다. 스웨덴 스타일의 건배 방식을 배웠다. 건배를 하는 사람들끼리 한 명씩 눈을 마주치고, “스콜(건배)”이라고 외치고 한 모금 마시고는 또다시 아이컨택을 한 후에 그제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고 했다. 마치 나는 너의 존재를 음미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나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는, 그날의 아이들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다. 보통은 트램펄린을 뛰고, 날씨가 좋으면 수영을 하고, 키오스크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동네를 걷다가 저녁을 먹었다. 그룹은 자유롭게 이런저런 구성으로 뭉쳤다가 흩어져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유연하게 흘러갔다.
떠나는 날, 작별을 하면서 J의 부모님은 말했다. “좋은 시간 만들어줘서 고맙구나. 너희들이 다녀온 곳들, 경험한 것들을 재밌게 들었고, 너희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참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 늘 지금처럼 세상을 탐험하면서 잘 지내기를 바란다. 또 만나자.”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그들이 우리의 삶이 부럽다니, 의외였다. 착실하게 사회적인 성공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우리의 불안정한 삶을 철없다고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다. 뚜렷한 계획 없이 떠도는 우리를 한심하게 생각하겠지,라고 말이다.
함께 지내면서 엿본 그들의 삶은 차분하고 안정적이고 여유로워서 나야말로 그들의 삶이 마냥 부러웠다. 많이 읽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깊고 정리된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빛이 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철없는 우리의 삶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역시 사람들은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막연히 부러워하게 되는 걸까. 다 가진 것 같은 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누추한 점,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는 걸까. 그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 그래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격려가 되었다.
신기한 여름의 날들이었다. 삶의 궤도가 겹치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 한 공간에서 같이 먹고, 함께 생활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낯선 서로에게 어쩐지 격려가 되었던 시간. 그래서 그때를 떠올리면 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