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여행은 가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것들 투성이다. 그것이 음식이든 숙소이든, 도시의 분위기이든. 막상 가보면 생각보다 좋거나, 기대를 못 미치거나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 많은 것들 중에서도 여행지에 가져간 책과의 궁합이 어떨지 늘 제일 고민된다. 지금의 내 상태와 여행지와의 케미 등을 모두 고려한 뒤에 고심해서 책을 골라가는데, 그렇게 챙겨간 책이 마음에 쏙 들어서 여행을 하면서 농도 있는 독서를 하게 될 때,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번 짧은 휴가에서 나를 즐겁게 해 주었던 책은 <스토너>라는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스토너의 삶은 평범한 불행으로 가득하다. 극적인 절망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평범한 슬픔. 마치 내 안의 작은 자아가 하나씩 조용히 고개를 떨구는 것 같은. 밥을 먹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본 아빠의 얼굴에 주름이 늘었다는 걸 느끼는 순간 느껴지는 애잔함 같은.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도시에 새로 생긴 농업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이때 자신의 삶과는 상관없어 보였던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학업을 지속하면서 대학 교수가 되지만, 삶의 중요한 지점에서 늘 실패한다. 결혼생활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딸과의 관계도. 교수로서도 학자로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늘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언젠가 삶을 마감했을 때, 스토너라는 한 사람은 살아있을 때처럼 만큼이나 미미한 존재로 사람들에게 잊혀간다.
스토너의 삶을 따라가면서 처음에 느끼는 기분은 슬픔이다. 애를 쓰는데도 안 풀리는 인생이 야속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끝에 다다르면 스토너의 삶이 사실은 그렇게 슬픈 인생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불행했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아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지만, 결국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문학에 대한 사랑이었고, 그는 그것을 진심을 다해서 좇았다.
그의 삶의 중심에는 자신의 직업인 영문학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실망스러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냈다. 결과가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라서. 그는 계속해서 그런 선택을 할 줄 아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스토너는 그런 날들이 쌓여가면 삶이 되고, 의미가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회사원이라면 승진이나 보너스, 칭찬받는 날이 아니라 내 업무가 인정받지 못하고, 동료들과 트러블이 있는 날들에도 일을 해나가고 매일매일 출근을 하는 일. 작가라면 독자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글임에도 진심을 다해 매일매일 문장을 연마해 나가는 일.
그런 매일매일이라는, 삶의 아주 사적인 면을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빛이 나지 않아도, 나에게 충만하고 의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용기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런 메시지에서 묵직한 감동이 몰려왔다. 좋은 책은 표현할 수 없었던 삶의 무언가를 갑자기 이해하게 한다.
뉴요커 매거진의 북리뷰에서는 <스토너>를 두고 “영국작가 제임스 설터의 글에는 ‘삶의 통찰'이라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하다.”라고 했다. 이 책에는 조용하고 깨끗한 문장에 담긴 지혜로운 목소리가 가득하다.
무언가를 많이 좋아하면 그것이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서 내 일부분이 된다고 믿는다. 스토너의 묵묵한 용감함이라는 결이 내 감정의 창고에 더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문득 어떤 날, 스토너만의 언어로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