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리는 작은 결혼식을 했다. 우리 가족과 그의 가족만이 모였고, 결혼식이 있었던 날이 두 가족이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금 이 시대의 결혼이라는 제도에 회의적인 내가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건 엄마의 마음에 위안을 주기 위해서였다. 실없는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이것이 우리가 결혼식을 하기로 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서른을 넘긴 딸에게 오래 만난 남자 친구가 있고, 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 것은 보수적인 엄마에게 늘 불편한 이슈였다. 직접적으로 내 결정을 꾸짖거나,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늘 우리 관계를 불완전한 것으로 보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 관계의 끝이 오게 된다면, 여자인 나는 피해자로 남는다고 걱정했다.
매번 연락할 때마다 엄마에게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내가 이 관계 안에서 얼마나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한지를 이해시키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어쩌면 결혼식을 하는 게 장기적으로 에너지 효율적인 (전적으로 나의 에너지의 측면에서) 방안이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래서 결혼식을 선택했다. 그냥 우리가 각각 하얀 드레스와 수트를 입고 두 가족이 만나면 그게 결혼식이 아니겠냐고 쉽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상으로 예상할 수 있겠지만, 막상 해보니 그렇게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결혼식의 형식과 준비 방법을 둘러싸고 엄마와 나의 의견은 매번 엇갈렸다.
엄마는 ‘작은’ 결혼식은 괜찮지만, ‘소박하고 조촐하게’ 하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 적당한 격식이 있고 예의를 갖추기를 바랐다. 내가 불필요하다고 보고 생략하고 싶었던 많은 것이, 엄마에겐 ‘적당한 격식’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캐주얼하게 입고 싶었던 우리는 결국 흰색 드레스와 블루 수트를 입었고, 하객들도 모두 정장을 입고 오셨다. 엄마는 엄마가 갖고 있는 제일 좋은 드레스와 주얼리를 하고 오셨다. 크진 않지만, 만나기 전에 두 가족이 선물을 주고받았다. 엄마는 수많은 백화점을 둘러보고서 고급스러운 한국 자기 세트를 준비했다.
그때의 나는 이것이 기본적으로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수적인 엄마의 성향과 ‘남의 시선’과 ‘체면'을 신경 쓰는 어른 세대의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다.
몇 년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최근에 다시 보면서, 결혼식을 둘러싼 주인공 정소민의 캐릭터와 그녀의 엄마의 엇갈림을 보면서 엄마의 마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정소민을 ‘순하고 싹싹한 아이'로 칭찬하자, 엄마는 이를 딸을 ‘만만하게’ 보는 것으로 해석하며, 그 자리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실용성을 내세우며 결혼식을 생략하려는 정소민 커플에게, 남들이 하는 것은 다 제대로 하면서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혼식을 고집했다. 결혼식 날, 엄마가 사위에게 전해준 편지에서 엄마는 딸의 꿈을 지지해줄 것을, 다른 건 다 필요없으니 그 한 가지를 꼭 약속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이 모든 신경전이 딸의 안전과 소중함을 확인받고 싶은 엄마의 걱정임을 보여준다.
아, 그랬던 거구나. 엄마의 마음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엄마는 체면이나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나’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인 내가 새로운 집단에 소속되려 하는 지금, 그들에게도 내가 소중한 존재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엄마의 보호본능으로 날을 세우고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결혼식은 나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줄 남편과 그의 가족에게 엄마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엄마가 타협하지 않았던 형식과 예의는, 내가 새로운 가족에 소속되어 기죽지 않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작고 소박하기만 해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변변치 않고, 쉬워 보여서는 안 되었다. 이 아이를 부디 소중히 대해주기를, 사랑해주기를, 쉽게 상처 주지 않기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고 엄마가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결혼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얽혀 있는 일 같아요. 문제는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진심이라는 거죠. 알고 보면 하나같이 다 예쁜 마음인 건데... 근데 예쁜 것들도 얽히고설키면 그게 원래 어떤 모양인지 알아볼 수가 없어지니까. 그게 원래 무슨 사랑이었던 건지 알 수가 없어지니까."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중에서
나는 엄마의 사랑을 오해했다.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살면서 나는 얼마나 더 많이 엄마의 마음을 오해했고, 안타깝게도 엄마의 진심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알고 보면 엄마의 걱정이었던 그 마음을 안심시켜주지 못하고, 알고 보면 애틋한 사랑이었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고마워하지 못한 게 아쉽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결혼에 대한 의미를 짚어주고, 대안을 생각해보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사랑을 소중하게 여기게끔 해준 드라마였다. 마무리의 독백도 참 좋았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혼인신고를 하든 안 하든, 무엇을 택해도 생각보다 그렇게 심각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어떤 형태로든 옆에 있는 이 사람과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는 것.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우선 사랑만 하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모든 진심을 담아 건투를 빈다.
어차피 이번 생은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