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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Mar 31. 2020

나의 스웨덴 가족 : 스톡홀름에서의 일주일

나에게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살고 있는 시누이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제시카이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솔직한 사람이다. 그녀의 솔직한 직설 화법은 담백함을 넘어,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한 번은 재채기를 하는 제시카에게  "Bless you"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톡 쏘듯 "그런 말 하지 말아 줄래. 나는 신을 믿지 않아."라고 해서 "어... 그래…"했던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종교적인 의미에서가 아닌, 관습적인 제스처로 했던 말이었지만 말이다.


정치적/사회적 입장에서는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다. 젠더에 대한 사회적 기준에 특히 예민해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한 명씩 키우는 엄마로서 둘에게 사회가 강요하는 성 역할에서 자유롭도록 신경 쓴다. 엘사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여자 조카에게 "너무 예쁘네 (You look pretty)"라고 했더니, 그걸 들은 그녀는 "너는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려. (You look good in any outfit)"라고 중성적인 표현으로 고쳐줬더랬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웃으면서 대화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진의를 알 수 없는 것보다는 좀 더 클리어하고 확실하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건 조금 긴장되는 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의 일정에서 일주일 정도의 여유가 생겨, 제시카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스톡홀름에 도착해서 그녀가 알려준 대로 우리는 제시카의 집 앞 공항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갈색의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이 반쯤 가려졌지만 멀리서도 한 번에 알아봤다. 그녀만이 풍기는 에너지가 있다. 자유로움, 그리고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의견과 신념이 단단한 사람이 갖고 있는 아우라. 우리를 만나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더니, 갑자기 우리 짐 내리는 것을 도와주고 있던 공항버스 운전사에게 다가가 “아저씨, 바지 지퍼 열렸어요”라고 알려준다. 풉- 역시 그녀 답다. 그녀와 함께 우리는 어떤 일주일을 보내게 될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 간단하게 집 투어를 해주었다. 얼마 전 10년쯤 함께한 파트너와 헤어지면서 살던 집에서 나와서 새로 마련한 집이었다. 방 두 개에 바다가 전망에 보이는 아파트였다.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예술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그녀를 닮은 공간이었다. 우리가 쓸 방을 안내받고, 방에 짐을 내려 두고서 거실로 나왔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자니, 반나절 간 바쁘게 움직인 여독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이런 나를 발견하고 제시카는 마실 것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 일은 너무 유감이야. 너도, 그리고 가족들 모두 많이 힘들지”

도착하기 전 막연하게 생각했다. 엄마에 대해 물어오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었나. 내 감정은 어디쯤 와있나.


그녀가 엄마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을 때는, 조금 갑작스러웠지만, 의외로 담담했다. 크게 힘들지 않게 답할 수 있었다. “고마워. 응 힘든 시간이었지 우리 모두에게. 유일한 위안은 엄마가 이제 아파하지 않고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거야.”

이게 정말 내 마음인지, 혹은 내가 들어온,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정형화된 대답을 그냥 할 뿐인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 대답에 나조차 조금 낯설었다.


제시카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어. 우리가 같이 보냈던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고,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기본적인 이야기를 한 것에 그쳤지만, 나는 그녀의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에너지가 정말 좋았어. 우리 모두는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잊지 못할 거야.”


생각지 못한, 마음을 건드리는 그녀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그런 내가 당황스러웠다. 제시카는 괜찮다는 눈빛을 하고, 내 등을 토닥였다. 그녀는 몇 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했던 우리 결혼식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가듯 조금 쉼표를 가지며 말하긴 했지만, 평소의 그녀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엄마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본 엄마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무너지고 말았다.


“너희 엄마가 우리 아이들을 정말 사랑스러운 눈빛을 하고 바라보고, 많이 안아주었잖아. 그녀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제시카의 말을 들으며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맞아, 우리 그때 진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엄마가 정말 행복해했는데. 엄마는 처음 만난 캘리포니아의 햇살도 좋아했고, 배 위에서 했던 선상 리셉션도 즐거워했는데. 대화가 안 통하는 두 가족이 처음 만나 어색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심해 준비했던 결혼식이었는데, 다행히 두 가족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서로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 엄마는 나에게 속삭이듯  “너네 시어머니 인상도 좋고, 시아버지 수염이 멋있네.”라고 말하며 그의 가족들을 흥미롭게 관찰했고, 자꾸만 우리를 불러 사진을 찍었더랬다. 마치 이 소중한 시간을 기억할 방법은 사진밖에 없는 것처럼. 마치 좋은 기억은 꼭 잘 쥐고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려고 했던 것처럼.


배 위에서 바람에 자꾸 머리가 흐트러져서 신경 쓰여하던 엄마의 모습, 멋진 풍경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와-하고 놀래던 모습까지 생생한데. 걱정 없이 행복했던 그 시간과 대비되는 지금이, 엄마가 이제는 곁에 없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고 콕 찔린 듯이 아프다. 더 많은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엄마랑 다음엔 남부 캘리포니아로 가자고 계획을 세웠었는데.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다시 괜찮아졌다. 삶은 원래 좀 흐트러지고 엉망인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옆이라서, 어쩌면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슬퍼하고 부끄럽게 울어버리고, 또 금세 괜찮아졌던 것 같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우리는 집을 나와 시내를 걸었다. 길을 걷다 만난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다가, 동남아 여행했던걸 그리워하는 그녀에게 조지 오웰의 '버마 시절'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동네에 가서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앉아 우리는 각자 커피, 와인, 그리고 맥주를 마셨다. 레바논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걷고 또 걸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고, 나는 화창한 날씨와 적당히 서늘한 북유럽의 바람이 좋아 이 거리를 한없이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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