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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Sep 18. 2021

친척들에게 미국인 남편을 소개하던 날

우리는 미국에서 두 가족이 모여 작은 결혼식을 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생략하기로 하면서, 대신 친척들을 초대해서 한정식집에서 인사를 드리는 자리를 갖기로 했다.


전형적 경상도의 보수적이고 근엄한 삼촌들과 까마득한 어르신들, 만나자마자 ‘아이고, 넌 왜 화장도 안 하고 다니니?’ 같은 익숙한 어택을 날리는 숙모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어색할 줄은 알았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 생각보다 더 긴장이 됐다.


상을 길게 이어 붙인 방에 들어가자, 남편과 나를 번갈아가며 위아래로 훑는 사람들의 눈길이 분주했다. 남편이 서툰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했을 때, 숙모들은 박수를 치며 ‘아이고, 귀엽네!’ 같은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대게 ‘귀여움’의 캐릭터를 부여한다.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개체를 귀엽다고 인식하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연세가 많으신 친척 어른께서 갑자기 나에게 남편의 가정배경을 소개해보라고 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PT 할 때도 잘 긴장하지 않는 나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이 질문 앞에서, 입이 바짝 마르고, 땀이 솟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이유는 그의 복잡한 가정사에서 어르신들이 듣고 싶어 할 ‘평범하고 내세울만한 점’만을 급하게 필터링해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숨을 고르고 ‘네, 시아버지는 변호사 출신으로…’로 시작하는 가족 배경을 읊기 시작했다. 끝나고 나니 다행히도 다들 흡족한 얼굴이었다.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국의 시부모님은 나에게 우리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식사를 시작하면서, 가까이 앉은 숙모들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결혼하고 어디에서 지낼 거니, 집은 샀니, 아이는 어떻게 할 예정이니 같은 질문들. 식사가 끝날 때쯤 막내 숙모가 내 손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네가 아무리 영어를 무리 없이 하더라도 말이야, 외국인은 외국인이잖아. 서로 완전히 이해를 못할 텐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지만, 사실 주변 사람들이 이런 뉘앙스로 걱정을 내비친적이 여러 번 있었다. 꽤 오랜 외국생활을 해 온 나에겐 국적, 언어,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경험이 많지 않다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비슷한 성향이나 사고방식을 갖는 게, 같은 언어나 문화를 공유하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저희는 비슷한 점이 되게 많은 사람들이라서 서로 이해가 안 되거나, 큰 장벽을 느끼거나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정도로 말한 것 같은데, 아마도 걱정스러운 눈빛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어렵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의 배경은 설명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관계, 우리 둘이 만나 어떤 공동체를 만들었는지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친밀감이나, 서로에게 느끼는 소속감, 안정감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가 있지.


그것들은 사실 일반커플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것들일 텐데, 상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에, 굳이 설명해야 하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인 카테고리를 벗어난 사람들로, 이해되지 못하는 존재로 남는다.

 

식사가 끝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부모님 집 근처에 예약해 둔 호텔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오늘 어땠냐고 물었다. 좋았어. 다 좋은 사람들 같았어. 말은 많이 못 했지만, 하며 웃는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근데 네가 외로웠겠다 싶더라. 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너랑은 너무 달라서. 너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아. 네가 외로웠을 것 같았어.”


순간, 눈물이 핑-돌았다.

누군가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런 느낌일까.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태어나서부터 내가 속해온 집단을 객관적으로 보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과 친척들 사이에서 내가  겉도는 것뿐이라고, 그건 내가  이상하기 때문에,  까탈스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느껴온 감정이 ‘외로움'인지도 몰랐다.


내 미묘한 감정 변화를 잘 읽는 사람

마음속 가장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어느 누구와도 느껴보지 못한 친밀감을 공유하는 사람


그건 우리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도 하고, 닮은 점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외국인'이라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서로를 단정 짓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로에게  너그럽고, 포용하는 관계가   아닐까.


누군가에게 다시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 외국인이라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않냐고 - 그럼 이번엔 다른 대답을 해야지.


상대가 외국인이든 아니든,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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