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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Feb 28. 2020

일터에서 너덜너덜해져 퇴근하는 길, 내가 읽는 글

긴 하루 끝에

수만 가지 이유로 잘못되고 있는 일들을 구해내고, 나를 방어하는데 기운을 소진하고

너덜너덜해진 채로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이 글을 읽었다.


작가 토니 모리슨이 The New Yorker에 기재한 자전적인 에세이다.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7/06/05/the-work-you-do-the-person-you-are


일터에서의 힘듦이 어린 토니 모리슨을 불행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아빠는 말한다.


“넌 그곳에(일터)에 사는 게 아니야. 넌 여기에 살고 있다고. 너의 사람들과 함께.

일터에 가서는 그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거야.

그리곤 너의 사람들과 너의 진짜 삶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 돼.”


토니 모리슨은 어린 시절 남의 집의 청소를 해주고 용돈을 벌었던 ‘돈벌이’의 경험에 대해서, 그 돈벌이가 주는 딜레마에 대해서 쓰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겪는 직장인의 비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번 돈은 그녀에게 영화를 보고, 군것질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번 돈의 반을 부모님께 드리면서 그 돈이 보험비나 식료품비로 쓰이는, 뭔가 인생을 책임지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하지만 일을 잘 해낼수록 상사(집주인)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무리한 요구를 받게 되는데, 싫다고 하면 잘리게 될까 두려워 버거워하면서 일을 이어간다.


일은 일일 뿐, 그녀의 진짜 삶은 집에 있다는 아빠의 그 짧은 말 한마디에 그녀는 많은 걸 깨달았다. 이렇게 탄생한 일과 노동에 대한 성찰은 그 이후로 그녀의 일에 대한 방침이 되었다고 한다.


1. 무슨 일을 하든 잘 해낼 것 - 회사나 상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2. 일의 가치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3. 나의 진짜 삶은 나의 가족이 있는 집에 있다.

4. ‘내가 하는 일’이 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 그 고유의 가치는 내 안에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많은 직업들을 거쳐갔지만,

다시는 내가 하는 노동의 사회적 가치가 내 가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하거나,

일의 안정성을 내 삶의 위에 두지 않았다.


I’ve had many kinds of jobs, but since that conversation with my father I have never considered the level of labor to be the measure of myself, and I have never placed the security of a job above the value of home.


- Toni Morrison



이 문장을 되뇌고 나면, 왠지 지금의 너덜너덜함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무리하게 나를 소진해버린 데서 오는 허탈함이 조금은 덜 서글펐다.

이 퇴근길, 이제 나는 오늘 번 돈으로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할 것이므로.


오늘도 밥벌이의 고됨을 묵묵히 감내하는 사람들이

진짜 삶이 있는 집으로 안전히 돌아왔기를.

그래서 일터에서의 자아와 안녕을 고하고,

남은 하루, 풍요로운 (물질적인 것 그 이상의 의미에서) 삶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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