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도 Apr 26. 2020

엄마의 일기

삶의 방식으로서 글을 쓰는 일, 그 시작에 대해

나의 시작은 엄마의 마지막과 닿아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일기장에서 '그동안 쓴 일기를 모아서 작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과 그것을 들은 아빠는 ‘쓸데없는 소리’라고 단칼에 모진 소리를 해 엄마가 마음이 아팠다는 그 글에서 마음이 울컥하지 않았다면, 글을 쓸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 그리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써 내려가며 엄마의 인생에 의미를 더하고 싶었다. 그 울컥함이라는 감정의 과잉이 엔진이 되고, 동기가 되어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마음의 장벽을 넘게 해 주었다. 이렇게 하면 엄마의 바람이 조금쯤은 이뤄지는 거라고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모른 채로 그저 기억을 더듬어 엄마가 아프면서 엄마 옆에서 보냈던 지난 1년 여간의 시간에 대해서 썼다. 쓰고 보니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와 나는 서로 사랑하면서, 왜 이렇게 쉽게 상처를 주고 또 쉽게 상처 받는지. 왜 우리의 관계는 쉽지 않은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마음은 설명하기 쉽지만 갈등은 복잡하고 설명하기가 쉽지가 않다. 우리는 이해보다 오해가 쉬워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엄마와 나의 갈등의 중심에는 조금씩 서로의 진심을 놓쳐버리고 오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 안에서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인정받고, 또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 사랑이 작고 연약한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세상에 복잡하지 않은 엄마와 딸의 관계는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랑과 상처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 관계의 숙명을 받아들였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이 전에는 미처 몰랐던 상처와 아픔을 발견하기도 했고, 그런 가라앉는 시간을 통해 문제를 이해하고 깨닫는 경험을 했다. 복잡하게 얽혀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명확해져 갔다.


글을 쓰는 시간을 통해 나는 막연하게나마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쓰이는 것들, 얽혀있는 생각을 오래 들여다보고, 글로 쓰며 세상을 알아가는 삶. 직업으로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글을 쓰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는 삶도 있는 거니까. 삶의 방식으로서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쓴 글을 모아 브런치 북에 ‘엄마를 잃어가는 시간’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며 사는 사람으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쓰며,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인생의 질문들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