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1)
“산다.”라는 의미는 뭘까
그냥 숨 쉬고 살아가면 모두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영혼 없는 눈빛, 무표정, 세상만사 무관심. 오늘도 아침이 오는 대로 맞이하고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기 싫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내가 좀 더 편해지길 원한다면, 나를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그렇다. 나는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꼬박 1년째 다니고 있다. 정신과에 이렇게 성실한 환자도 있을까? 1년을 내리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 ADHD인 내가 지각도 하지 않고.
나에겐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죽고 싶지 않다는 뜻과 같았다. 나도 노력은 많이 해봤다. 심리상담만 30회기에, 얼마나 나아지고 싶으면 매번 죽고 싶다며 신세한탄을 하면서도 왜 주치의 선생님을 매주 만나러 갈까? 또, 죽고 싶다면서 아침저녁으로 약을 열심히 챙겨 먹을까? 밤마다 일렁이는 우울함을 약으로만 달래고 있던 나 자신에 무력감에 느끼고 있던 터였다.
이번 주 주치의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나에 대해 얻은 정보가 하나도 없다.
저는 만성형 우울증 인가요?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죠?
- 아직 병명은 적지 않았어요. 약은 조울에 가까운 치료를 하고 있긴 한데.. 아직 판단을 내리긴 어려워요. 아직 본격적인 치료도 하지 않았고요.. 우울증이 쉽게 나았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보통은 우울증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아.. 대충 난 치료가 오래 걸리겠다는 말이구나.. 난 정신과 특유의 모호함에 놀랐다. 그래서 난 어떤 사람이라는 걸까. 조울과 우울 사이 그 어딘가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게 분명하다.
나를 설명할 병명이 존재하지 않음에 내 정체성이 흔들린다. 1년을 고생하며 다닌 대가가 상세불명의 우울(?) 조울(?) 증이라니... 내가 느끼는 감정에 정확한 정의조차 내릴 수도 없다니.. 정신과란 이런 건가. 마치 다 허구 허상같이 느껴진다. 밤마다 무너지는 내 마음을 무심히 짓밟는다.
저는 살고 싶지 않아요. 하루하루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죽어야 할 객관적인 이유에 대해서요.
- 요즘 괜찮아진 거 맞죠?
(주치의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하셨다)
괜찮아 보이나요? 아니요. 하나도 안 괜찮아요.라고 하마터면 말할뻔했다. 순간..
그냥 난 대답 못하고 얼버무리고 끝이 났다.
그러곤 얻은 거 하나 없이 투덜투덜 병원을 나왔다.
나는 그저 존중받고 싶었다.
살고 싶지 않은 내 감정을 이해받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객관적 이유들이 있기때문에 앞으로 끝나지 않을 내 우울과 불안에 대한.
여에스더 선생님은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하셨다.
명랑한 건 제 성격이고, 우울증은 제 병이에요.
난 여태껏 우울증이 내 정체성이란 생각에 주변에 숨겨왔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드러내는 순간 그 자체로 무너질까 봐. 그래서 그런가 “나도 너같이 살면 행복하겠다. “ 혹은 “우리들 중 네가 가장 우울과 거리가 멀 거 같은데 왜..?”라는 말을 종종 듣긴 했다. 맞다. 난 우울증 걸린 애가 아닌 항상 밝은 애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내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이렇게 푼수인 건 내 성격이고 우울은 내 병이다. 내가 아무리 우울증이라 한들 우울은 내 병이지 오로지 내 자체라고 설명할 수 없다. 우울증이 내 모습 전부 인 건 아니기에.. 이제부터 나는 내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내가 죽고 싶었구나.) 내가 나의 우울과 불안을 밖으로 드러내고 존중해 준다면 조금은 살아가고 싶어 질까?
가끔 나는 타인에게 나의 죽고싶은 마음도 존중받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새로운 옷을 내 맘대로 골라 입듯이, 내 기분도 내 입맛대로 골라 입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저 이렇게 태어난 나라서 스스로를 이해해 주기로 했다.
여태껏 나는 우울한 이런 내게 더 살라는 말은 너무 폭력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느꼈었다. 얼마나 힘든지 모르면서 버티라니.. 내가 가장 공감하지 못한 말이 “살아야 한다”였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히 명확해졌다. “아직은 살아야 한다.” 우울과 불안으로만 날 설명할 수 없기에. 좋은 모습, 우울한 모습도 모두 나이기에. 내가 느끼는 양가감정과 함께 어둠을 극복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 밤도 힘들지만 “살아볼게요”
오늘도 “잘 살아가봐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