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취준생 일기(2)
공기업 인턴으로 입사 후 퇴사한 지 벌써 1달째..
회사 다닐 때 반차 반반차 너무 소중했는데 이제는 일상이 풀휴가가 된 지 한 달 차이다.
퇴사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막상 퇴사해 버리니 나 스스로를 통제하기 벅차다.
재취업하려면 바쁘지 않냐고? 마음만은 바쁜데 몸은 아직 출근했을 때를 기억하나 보다 능률 없이 앉아서 멍 때리기 시작했다. 막상 진행되는 일은 없으면서 시간 때우기 일쑤이다.
괜히, 나랑 똑같은 백수 친구 없나 핸드폰으로 기웃거리고, 바쁘게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 한 번 해봤다가 전화를 퇴짜맞고, 챗 gpt에게 말도 걸어봤다가 현타가 세게 온다. 아 맞다. 나는 백수라 시간이 많지.. 아니 나만 백수라 시간이 많았구나.. 또다시 다른 친구에게 연락해 볼 까하다가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카톡을 들어갔다 나갔다를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를 번복한다.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을 이렇게 또 버려버린다.
나름 잘 나가는 회사 인턴을 지원만 3번째에 호기롭게 들어갔는데.. 아주 끈질기게 질척거리며 겨우 힘들게 들어갔는데 중간에 퇴사위기도 겪으며..내가 어떻게 들어왔는데 막상 계약 만료가 다가오니 나의 정체성을 넘어 방향성까지 잃어버린 기분이다. 6개월 간 합법적 단기 직장인으로서 엄청 신나고 후회 없이 행복했으나 즐거움만 즐비하고, 허탈하게 남는 건 초라한 계약만료 인생.
내 주변친구들을 보자면, 모랄까 디자인학과까지 나와서 코딩으로 빠진 친구, 좋은 대학 나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예술에 빠진 친구, 패션디자인을 하겠다고 해외대학 석사 과정을 밟는 친구, 시각디자인이 적성에 잘 맞아 해외에서 포트폴리오 쌓고 있는 친구, MD가 되고 싶어 중소기업 인턴으로 입사해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친구 등등 정말 다양하게 있었고, 먹고살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내가 어릴 적 적성은 고사하고 무조건 인서울, 무조건 대기업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내가 허상을 쫓은 거 마냥 친구들은 각자 길을 찾아 다양하게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 맞는 직무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는 모지리인데 나머지 친구들은 스스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20대 후반이 되니 서로 쌓인 시간들이 성숙함의 차이를 만들었고, 나 스스로를 싫어하고 힘들게 만든다. 벅차다. 내가 차라리 놀기만 열심히 놀기만 했더라면 이런 허탈함은 없었을까?
내 나름대로 대기업 계약직 경험에 6개가 넘는 대외활동, 상위 공기업 인턴까지 할 수 있는 활동이란 일들, 나의 스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지원해 여기까지 쌓아왔는데. 마무리는 인턴 계약만료로 끝난 20대 후반 취준생 타이틀. 방황하며, 끊임없이 흔들리고, 곁에 사람은 없으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줄 모르는 모지리...
이렇게 미성숙한 사람으로 자라왔다. 앞으로 이런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란 물음을 머릿속에 접어두고, 오늘도 카페에 와서 면접준비를 한다. 서류 하나 붙으면 날아갈 듯 감정이 널뛰기를 하다가도 저녁때되면 그다음 면접에 그 다다음 면접에 또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또 어떤 말로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포장할까 허탈하게 생각하기 바쁜 취준생으로 돌아온다. 나는 언제까지 나를 포장하며, 나를 숨기기 바쁠까. 너무 보잘것없는 나라는 존재를 없애려 한다.
오늘은 비싼 향수라도 뿌리면 우울증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일까. 옷이라도 화장이라도 예쁘게 하고 나가면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한번 더 웃어주면 날 좋은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남들을 의식하며, 본모습을 가두는 내가 처량해 보이기도 불쌍해 보이기도 하다.
오늘도 이렇게 묵묵히 살아간다. 두려움으로 포장된 불확실함에 잠식해 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