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3)
오랜만에 정말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나의 초등학교 친구이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추억은 달랐지만, 20살이 되자마자 자주 만나서 부쩍 친해진 사이가 지금 20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녀에게 나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만났다. 나의 불행에 대해. 다행히 나의 불행에 함께 안타까워해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나의 첫 정신과 방문이야기, 지금 심정이 어떤지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녀에게 털어놓으니 맘이 편해지는 거 같았다. 그래도 그녀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바로 만나서 얘기하고 풀 수 있었으니까. 지금까진?
하지만, 그녀는 곧 일본 취업시장으로 뛰어들 상황으로 일본으로의 출국으로 인해 헤어짐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나의 마지막 친구도 자연스럽게 나를 떠난다는 생각에 속상하기도 하지만, 쿨하고 용기 있게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친구의 앞길에 응원해 주는 좋은 친구로 남고 싶었다.
너 얘기를 듣다 보면, 좀 아픈 아이라는 게 느껴져
그렇다. 이렇게 나 자신을 숨기지 않으면, 사람들 모두 내가 좀 이상하단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앗 맞다. 방심했다. 숨긴다는 걸. 하지만 이번엔 그냥 넘어가 보기로 했다. 상담 선생님이랑 약속한 걸 지키기로 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나에겐 힘듦을 알아차리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너는 하고 싶은 게 이렇게 많은데 왜 30살까지만 산다는 거야.
한때, 난 원데이 클래스며, 여행이며 쏘다니길 바삐 했다. 왜냐하면 행복해질 노력이라도 하고 싶었으니까. 나의 우울에 잠식당하고 만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걸 높게 봤다고 했다. 하지만,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대답에 난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30살까지 산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 말이다. 잠시나마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선택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보여주며, 나만의 방식으로 내 선택을 변호하고 싶었나 보다. 나도 잘 살아가기 위하여 노력을 많이 했다고, 또, 한 가지 있다면, 그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녀는 왜 사고방식이 그렇게 흘러가냐며 다그쳤다. 또, 우울한 기질이란 게 있냐고 물었다. 난 그거보단 불안이 높은 아이라고 상담선생님이 그러셨다고 했다.
상담 선생님은 일반사람들은 본인 얘기를 하며, 아픔과 슬픔에 대해 내려놓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그 방법을 몰라서 혼자 끙끙대고 이렇게 고장 난 거라고. 앞으로 나도 노력해 볼 예정이다. “나 힘들어요~”라고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 부딪혀 볼 거다.
나도 앞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모든 걸 털어놓고 편안해질 수 있을까? 또, 내 모든 걸 말해도 날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럼 내 고단한 삶이 좀 편해질 수 있을까란 얕은 희망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