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연 Apr 07. 2020

사랑은 화학적 반응에 불과하다던 친구가 사랑에 빠졌다

더운 여름 계절학기를 마친 친구는 밥이나 먹자며 나를 불렀다.



"교수님이 사랑은 그저 화학적 반응에 불과하다더라고.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단순히 뇌의 작용으로 인해 현혹되는 거야."



과학 심리 수업(정확히 어떤 수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을 수강한 친구는 밥을 먹다 계절학기의 마지막 날에 자신이 얻은 교훈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왜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현혹되는 것에 불과한지 나름 과학적으로 설명해주었지만 애석하게도 절반은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친구가 뭐라 설명해주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사랑이 정말 화학적 반응에 불과하다던 교수님의 말씀과 이를 맹신하는 친구와 그 말에 납득이 간 나는 밥을 먹으며 친구와 한참 사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고찰을 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얘기해봤자 결론이 나지 않는 주제임을 알게 된 우리는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리고 몇 달 뒤, 친구는 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나름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만난 사람과 함께.



진지하면서 엉뚱했던 친구와의 대화 이후로 나는 '사랑'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생각을 꽤나 많이 했던 것 같다. 다양한 관점으로 사랑을 바라볼 수 있지만, 나와 내 친구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랑은 연인과의 사랑을 뜻했다. 이후로 나는 사랑을 하는 연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으며 이들이 어떻게 해서 그 '사랑'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토론토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공교롭게도 같은 반 친구 중에 결혼을 한 친구가 있어 어떤 계기로 연인과 결혼을 결심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올해로 35살인 그에게 한참 어린 내가 당돌한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질문을 던지고서야 들었지만.. 다행히 친구는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정말 그게 다냐고 되물었을 만큼 간결한 답변을 해주었던 친구는 정말 그게 전부라 대답하고는 미소를 띤 얼굴로 왼손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몇 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동경 아닌 동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몇 시간 뒤, 수업이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그는 사실은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며 수업 시간에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확신했다. 사랑은 어쩌면 정말 화학적 반응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사랑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던 나의 친구는 어떠한 증명 방법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사랑에 빠졌고, 토론토에서 만난 35살의 멋진 청년은 몇 번의 고비 끝에 결혼을 했다. 최근에는 운동 선생님으로부터 몇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연인과 곧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어떤 모습이든 아무렇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결혼을 결심했다 한다. 


정답은 없지만 '무엇이든' 혹은 '어떤 것이든'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사랑인가 보다.




땡스투 토론토에서 만난 친구 Hugo



매거진의 이전글 평화롭고 심심한 천국, 캐나다 토론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