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영 Aug 19. 2024

폭력 끝에 평안은 없다

폭력의 연쇄성에 대하여 - 연극 <너츠>

극단소년의 미스터리 연극 <너츠>가 지난 1월 워크샵 공연을 거쳐 7개월만에 정식 초연으로 돌아왔다. 


<너츠>는 미국 북부의 한 펍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FBI 요원 ‘새미'와 그를 돕는 분석가 ‘레온’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각자 스스로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세 명의 용의자들의 등장으로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지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사를 이어나가던 새미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The Nuts.

직역하면, ‘미치광이들'쯤 될 것이다. 


주인공 새미는 저마다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세 ‘미치광이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전기수리기사 ‘토드’는 우연히 만난 행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외로운 자신의 처지와는 달리 행복해 보이는 그에게 박탈감을 느끼고, 따라가 살해한다. 분장사 잭은 학창 시절 자신의 성 정체성을 두고 심한 괴롭힘을 행사했던 여성을 찾아가 결혼식 전날 메이크업 중 살해한다. 사람들에게 ‘천국의 문'을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교주 다이머는 이들을 철로에 뛰어들어 집단자살하게 만든다.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다른 용의자들. 그러나 개별적으로 일어난 세 개의 독립적인 사건들처럼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는 묘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유사한 폭력의 경험. 결국 드러나는 진실은 바로 이 세 명의 용의자들이 사실 새미의 서로 다른 인격들이었다는 것이다. 


토드, 잭, 그리고 다이머는 새미가 가진 심연의 파편이다.


토드는 거칠어보이지만 깊은 외로움을 지녔다. 아버지와 형에게 신체적인 학대를 당해온 억압의 경험은 그에게 가족으로부터, 나아가 세상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소외감을 안겨주었고, 이러한 절망과 좌절은 토드가 자신의 외로움을 뼈져리게 체감할 때 분노로 치환되었다. 이는 결국 살인이라는 더 큰 폭력으로 분출되고 만다.


은 성 정체성을 고백한 후 친형과 그의 친구들에게 성희롱과 폭행을 당하며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흉터가 남았다. 그는 형의 친구를 결혼식 전날 찾아가 흉측한 모습으로 만든 뒤 살해함으로써 학창 시절 폭력에 대한 복수를 자행한다. 


다이머는 세상의 인정을 욕망한다. 자신이 사람들을 ‘천국의 문'으로 인도한다는 그는, 기차 앞으로 뛰어드는 신도들을 보며 ‘내가 신’이라는 광기 어린 포효를 내뱉는다. 폭력과 억압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경험에서 비롯된 무력감은 강력한 인정 욕구와 광기로 변모하여,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야기했다. 


억압, 모멸감, 무력감. 

새미의 다양한 ‘미치광이’ 자아들을 만들어낸 감정이자, 폭력의 산물이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으로 암울한 유년 시절을 보낸 새미는 무수한 폭력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행복에 대한 보상을 갈구했다. 자신을 짓밟은 이들에 대한 단죄로서 새미가 선택한 것은 바로 더 큰 폭력이었다. 

피해자였던 새미는 이제 더 이상 희생양이 아니다. 대신 가해자가 되어 폭력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폭력으로 이룩한 복수는 상처를 치유해주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거대한 죄책감에 짓눌려 괴로워하던 새미는 결국 자신의 인격을 셋으로 쪼개,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 속에 머무른다. 


스스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던 새미의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과거에 대한 보상이라는 이름하에 스스로 광기에 가까운 폭력을 자행하던 자기자신에 대한 단죄였을 것이다. 자신을 향한 마지막 폭력을 통해 비로소 새미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한편 누군가가 희생당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 


연극 <너츠>는 미스터리 연극의 형식을 빌려 폭력의 잔혹성과 연쇄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관객들은 점차 진실을 마주하고 무너져 가는 새미의 모습을 통해 폭력과 억압이 그 피해자를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반대로 폭력을 행하는 가해자 또한 얼마나 큰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를 지켜보게 된다. 새미 내면의 ‘미치광이들’은 그가 당해온 폭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행한 폭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맥락과 이유를 불문하고, 폭력 끝에 평안은 없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44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