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사랑.
어쩌면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복잡미묘한 감정, 관계, 행위.
여기, 사람보다도 더 사람같은 사랑을 배워가는 두 로봇이 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버려진 헬퍼봇들이 모여 사는 헬퍼봇 아파트 주민으로 만난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을 모르던, 프로그래밍된 대로 행동하는 로봇들이 ‘사랑’의 감정을 깨닫고 ‘사랑’의 행위를 함께하는 모습을 통해 이 극은 관객에게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주인공 올리버와 클레어는 로봇이다. 정확히는,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서 버림받은 헬퍼봇들. 그들은 버려진 헬퍼봇들이 모여 사는 헬퍼봇 아파트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따분한 일상을 반복하며 끝이 어디인지 모를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우연한 만남 이후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 둘은 헬퍼봇들의 규율과도 같은 헬퍼봇 아파트를 탈출해, 올리버는 전 주인이자 친구인 제임스를 찾아, 클레어는 늘 꿈꿔왔던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함께 제주도로 향한다. 그곳에서 올리버는 제임스가 이미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과 제임스의 가족이 더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아픈 진실을 마주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함께 반딧불이 숲에서 시간을 보낸 두 로봇은 과거의 무수한 시간 속에서는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랑이란 멈추려 해봐도 바보같이 한 사람만 내내 떠올리게 되는 것
사랑이란 그리움과 같은 말
- '사랑이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바로, 사랑이다.
로봇은 인간성이 결여된 비인간적 존재이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스스로의 존재 이유에 대해 성찰을 하거나 타인과 관계 맺을 필요도 없다. 그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스스로의 목적에 따라, 프로그래밍된 매뉴얼에 따라 자신의 일을 수행하면 그뿐이다. 충전을 해야만 신체가 작동하고, 망가진 곳이 있다면 부품을 구입해 조립하기만 하면 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완전히 망가져 못 쓰게 될 때까지 프로그래밍된 억겁의 세월 속에서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야만 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계속해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탐구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유한한 시간 속에서 저마다의 가치를 찾아 헤맨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기도 한다.
헬퍼봇 아파트라는 정해진 틀 속에서 로봇이라는 비인간으로 살아가던 올리버와 클레어는 점차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설렘, 행복, 두려움, 그리움, 슬픔과 아픔을 비롯해 사랑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며 인간적인 사랑을 시작한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세계를 하나로 끌어안는다.
이렇듯 비인간적 존재가 행하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를 통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복잡미묘한 사랑의 면면을 담아내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촉발한다. 올리버와 클레어가 스스로 정해진 규율을 탈피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사랑을 하며 차츰 더욱 인간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인간을 얼마나 인간답게 하는지 엿볼 수 있다.
클레어는 전 주인에게서 전해들은 반딧불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하며 언젠가 꼭 제주도의 반딧불이 숲을 가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충전도 하지 않고 빛을 낸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클레어의 모습에서는 반딧불이에 대한 동경마저 느껴진다. 헬퍼봇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배터리에 종속된 채,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는 클레어에게 찰나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가진 반딧불이는 선망의 대상이자 한편으로는 희망의 표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클레어의 설명처럼 반딧불이는 충전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몸에서 빛을 내고, 기껏해야 3일 정도뿐인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더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스스로 빛을 내고, 짧은 시간 안에 끝나버릴지라도 아름다운 추억과 감정들로 삶을 수놓는다.
올리버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클레어는 고치지도 못한 채 점점 망가져 가는 자신의 몸을 보며 괴로워하는 올리버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모든 사랑의 관계에는 끝이 있다. 그것이 씁쓸하고 담담한 헤어짐일 수도, 한쪽의 배신일 수도, 죽음일 수도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쩌면 사랑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 바래지더라도 그 순간 나누던 서로만의 ‘반딧불이’를 잘 간직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