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기후 연극 ‘Kyoto(교토)’ 후기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이 들려주는 기후 이야기

by 홍차

이 연극은 2시간 35분 동안 교토의정서가 합의되기 전까지의 긴박한 10년을 기가 막히게 요약한다. 석유 로비스트인 '돈'을 중심으로 유엔기후협상 1기 (COP1)부터 교토에서 열린 기후협상 (COP3)이 어떻게 극적으로 합의되었는지를 묘사한다. 극장은 유엔 회의장을 연상시키는 원형 회의장을 무대로 하며, 관객 모두가 회의장 참석 뱃지를 받고 옵서버(참관인)처럼 회의를 관람하는 형식이다.


유엔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 참관했었던 사람으로서, 기후협상의 현실적인 장면을 제대로 조명한다고 느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몇 장면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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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협상 A-Z

1990년도에 시작된 유엔기후변화회의(캅 COP)는 올해 COP30을 맞아 아마존숲의 강어귀가 시작되는 도시 벨렁에서 열린다. 매년 11월-2월경 2주 동안 대륙별 순차적으로 주최되며, 이전에는 바쿠, 두바이, 이집트, 글라스고, 마드리드 등에서 개최되었다. 매년 193개국에서 약 6만 명이 협상가, 옵서버, 미디어로서 각자의 목적을 위해 회의에 모인다. 작년 카본브리프 연구에 따르면, 한 국가당 최소 2명에서 최대 2천 명의 대표가 회의에 참가했다. 한국은 13번째로 큰 대표단으로 437명(협상단 121명)이 바쿠 회의에 참석했다. 협상단은 2주간 본 회의에 출입 가능하며, 만장일치로 의결안을 조정해야 한다.


연극에서는 '기후변화'를 국제회의 초안에 처음으로 넣을 때 ‘지구온난화가 국가들의 발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can/would)]/ [있을 것이다(could)]’로 긴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후협상의 대부분은 이처럼 단어 하나, 마침표 하나로 밤을 지새운다. 영어로 작성된 초안은 현장에서 빠르게 수정되며, 비영어권 협상가들은 이를 따라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더욱이 협상단만 출입할 수 있는 회의에서는 통역 지원이 없고, 자연스럽게 영어권 국가들의 발언이 중심이 된다. 특히 민감한 안건이 논의될 때는 수십 명의 협상가들이 국가 이름표를 들고 발언권을 얻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기후협상에서는 국가들이 국익이 비슷한 집단으로 뭉친다.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강력한 개발도상국 연합인 G77+중국, 아프리카 연합(AGN), 섬나라 국가 연합(SIDS), 저개발도상국(LDCs), 아랍국가 연합, 그리고 유럽연합(EU) 등이 있다. 한국은 스위스, 멕시코 등과 함께 환경청정연합(EIG) 그룹에 속해 있다. 회의에서는 주로 유럽연합이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을 주장하는 반면, 개발도상국은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고, 아랍 국가들은 석유 산업 보호를 중시하는 등 각자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협상의 타협점을 모색해 나간다.

IMG_3231.jpg 연극 교토 엔딩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역사적인 순간이 바로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정이다. 연극의 주요 소재인 교토의정서는 1997년 체결된 최초의 기후 협약으로, 선진국을 대상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 파리협정이 채택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구분 없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할 것을 약속하게 되었다. 사실상 교토의정서 이후 기후변화는 단순한 과학적 사실을 넘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되며 정치적 관심의 중심에 놓이기 시작했다.


연극을 통해 알게 된 세 가지 사실:


첫째, 주인공 돈이 활약했던 Global Climate Council(GCC)은 실제 1989년부터 활동했던 대규모 로비스트 집단으로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교토의정서 체결을 방해하기 위해 교토에서도 열심히 활동을 이어갔다. GCC는 석유회사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지지를 받으며 2000년도 초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야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옵서버들의 참관을 제한하고 협상단만 출입가능한 회의가 있는 것은 이러한 로비스트들의 활동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둘째, GCC 활동으로 인해 기후변화와 인간 산업화 활동 간의 인과관계를 처음 명확히 밝힌 과학자 벤 센터(Ben Santer)는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협박과 취조, 수많은 의회 증언 속에서 그의 연구는 당시 산업화의 적으로 여겨져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오늘날 기후변화가 뉴스의 주요 토픽이 되기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의 단합된 목소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셋째, 교토의정서가 합의에 난항을 겪을 때 아르헨티나 의장 라훌은 회의를 극적으로 합의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마지막 협상이 48시간 동안 계속되자, 라훌은 협상장의 문을 잠그고 의정서의 1조부터 28조를 단숨에 합의를 이끌어낸다. 그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기후협상은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라훌에게 돈이 언쟁을 벌이지만, 그는 능청스럽게 "기후변화 대응은 당연한 거지요.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려 그에게 물음을 던진다.


교토의정서가 합의되었을 때, 로비에 실패한 돈은 허망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무대 한가운데 조명아래 서서, 마치 자정이 다 된 시계를 연상시키며 독백을 이어간다. 담담하게 아들에게 말한다. "잘 지내지? 난 지금 교토인데 회의는 이제 다 끝났어. 기후변화는 이제 너의 몫이야, 네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야".


무대의 배경인 1997년으로부터 28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과연 돈이 로비하고자 했던 석유의 시대일까? 아니면 라훌이 바랐던 모습일까?


래퍼런스

1. 연극 교토 시놉시스 https://www.rsc.org.uk/kyoto/the-plot

2. [환경잇슈]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기후변화의 심각성 담은 연극 ‘교토(Kyoto)’ 공개https://www.vegannews.co.kr/news/article.html?no=22223

3. COP29 국가별 대표단 규모 https://www.carbonbrief.org/analysis-which-countries-have-sent-the-most-delegates-to-co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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