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벽 4시의 고요함과 글쓰기

by 쏭유


참 오랜만이다. 새벽 4시에 글을 쓴다는 것.

새벽 4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모든 게 멈춘 것처럼 고요한 시간, 코끝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시간.


요즘 두 살 아들과 저녁 9시 반쯤 잠이 들면 새벽 1시나 2,3시쯤 잠이 깬다.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휴대폰을 안 보고 자야지 하다가도 뒤척이며 30분은 붙들고 있게 된다. 임신기로 자주 화장실에 가고 싶어 새벽에도 화장실을 다녀오는 날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어제 아들의 어린이집 상담이 있었다. 다행히 임신기 단축근무를 하고 있어 4시에 마치고 여유롭게 상담을 갈 수 있었다. 나는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아빠가 아이 등하원을 한다는 이유로 어린이집에 몇 번 간 적이 없었다.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

어린이집 입소상담, 첫날 등원, 어린이집 운동회, 일찍 마쳐서 아이 하원 때 데리러 간 것.

아이를 작년 7월부터 맡겼는데 해가 바뀌고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일이 바쁘다고 해도 무관심한 엄마처럼 보였을거다.


4시에 마친 아들은 하원 후 아빠와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슈퍼에 들렀다. 아빠의 손에는 비타 500이, 아들 손에는 노란 바나나퀵과자가 들려있었다. 엄마 하며 뛰어오는 아들의 해맑은 웃음에 바나나퀵 과자가 입안에서 사르륵 녹아내리는 기분이였다.


드디어 다섯 번째 어린이집 방문이다. 어린이집은 분위기는 따뜻했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방문 때보다 아이가 지낸 기간만큼 더 푸근해져 있었다.


남편이 아이를 봐주고 나는 선생님과 상담시간을 가졌다. 나는 사실 걱정이 없는 엄마였다. 노심초사 다칠까 봐 걱정하지도 않고, 아이가 다쳤다는 연락에도 태연했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이가 크면서 넘어지고 다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에서 말이 느리다고 했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도 단어를 따라 말하고 있었다.


걱정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일이다. 나는 걱정보다는 기대로 바꾸는 생각을 한다.

지금 잘 못해도 그럴만한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고.


아이 상담도 걱정보다는 '지금 잘 크고 있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7월에 이사 계획이 있는지 재차 확인하시며 아쉬워하셨다.


아이의 이야기를 누군가와 30분 이상 이야기한 건 오랜만이었다. 이야기 끝에 "어머님이 더 전문가이시잖아요. 원장님께 대단한 분이라고 들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글도 쓰시고 책도 내시고."

나는 "아니에요. 선생님들이 더 대단하시죠." 라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 지도 오래되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글을 쓰고,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보냈던 새벽시간. 그 시간이 밀도 깊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었지만, 괴롭고 또 고독했던 시간이었다.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처음으로 쓰는 글이다. 앞으로도 내 삶을 기록하고, 그때의 공기, 느낌, 촉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남겨두고 싶다.


잠시 많은 걸 내려놓은 시점에서 하나씩 다시 내 삶으로 들여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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