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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Mar 09. 2018

피레네를 넘어

33. 반갑고 외로운 길 - GR65의 종착지 혼스보, 론세스바예스로

10월 11일 일

GR65의 마지막, 그리고 프랑스길 시작

Saint-Jean-Pied-de-Port -  Roncesvalles(Roncevaux) 25.6km


산티아고 순례길 하면 프랑스길이 가장 유명하리라. 그만큼 북적이는 길이란 말이기도 하겠다. 

그 프랑스길의 출발지인 생쟝피에드포흐에서 나는 두 번째 시작을 한다.


프랑스에서는 다들 7시쯤 일어나 식사를 하고 길을 시작했는데 오늘은 5시부터 알람이 울려댄다. 6시에 일어나 길을 시작하려 했는데 불가능하다. 마지못해 일어났는데 벌써 출발한 이들이 잔뜩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제 일본어로 인사해드렸더니 엄청 기뻐하시던 무츠코씨가 먼저 출발한다며 이따 보자 하신다. 이 무츠코씨는 잠시 후 피레네 언덕길에서 마주치고 그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H, Y와 L은 짐을 부치고 가볍게 걷는다. 나는 아직까지 짐을 부쳐본 적이 없어서 지고 걷겠다고 했다. 이 결정은 내 순례길에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잘못한 결정이었다. 안 그래도 삔 오른쪽 발목과 정강이 쪽 근육통이 점점 심해져 천사 같은 H에게 약을 잔뜩 받아 먹은터였다. 미련 맞은 나는 짐을 다 지고 걸어보겠다며 호언장담했더랬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이들이 먼저 떠난 뒤 내가 거의 마지막으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가방을 메고 알베르게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언덕길을 상큼하게 내려간다. 걷다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어 멈추어선다. 가방을 뒤져본다. 


헉. 순례자 여권이 없다.

선천적 덜렁이인 내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갑이나 여권 혹은 잔돈을 잃어버리지 않은 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소중히 들고 다니며 꼬박꼬박 도장을 챙겨 받아 온 순례자 여권을 잃어버린다니.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항상 베개 밑에 두었었는데 오늘은 모두가 빨리 출발하니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일일이 챙기질 못했다. 출발하고 3분 만에 깨달았기에 망정이지. 언덕길을 뛰어올라간다.


알베르게에 뛰어들어가니 아주머니가 토끼눈으로 날 본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 베개를 들추어 보니 다행히도 내 어여쁜 순례자 여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 정말 다행이다.

한숨 돌리고 다시 언덕길을 내려가 길을 시작한다. 성당에 잠깐 들러 축복을 요청하고 익숙한 GR마크와 새로운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마지막으로 머무는 프랑스의 마을, 생장드피에포흐. 유난히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길을 시작할 때 사람이 없거나 한두 명 보이는 것이 다였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분명히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인데 앞에도 사람이 많고 뒤에도 사람이 많다. 다들 첫 시작에 들떠 사진을 계속 찍는다. 다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언덕길을 오르는데 너무 힘들어 죽겠다. 정강이의 근육통과 발목 통증은 점점 심해진다. 발날 쪽의 통증은 아릿하게 날 쪼아댄다. 

해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떠올라 들판을 밝힌다.

언덕을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풍경은 이 통증을 가끔 잊게 해 준다. 

짐을 부쳤어야 했어.. 미련 맞은 나는 꼭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다.

GR65, 슈망 드 생쟉 드 콩포스텔이라고 부르는 건 여기까지가 마지막이겠지. 이제 나는 슈망 드 생작에서 카미노 데 산티아고로 넘어간다. 같은 말이지만 다른 느낌. 오늘은 날씨도 맑고 좋아 피레네 길이 열리는 날이다.

이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펼쳐졌을 때, 이미 길에는 수많은 순례자가 언덕길을 낑낑 거리며 오르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첫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방에서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나 또한 이렇게 힘든 코스는 콩크나 오브락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다. 아무래도 다리가 계속 아파와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이 풍광이 보일 때쯤 잠깐 자리를 잡고 쉰다. 내가 털썩 배낭을 바닥에 두고 그 위에 앉는데, 다른 여자 순례자 두 명이 내 옆에 따라 자리를 잡는다. 자연스러운 인사가 오간다. 알래스카에서 왔다는 델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는 알리시아란다. 오늘 길 처음 시작인데 죽을 것 같다고, 조금 후회한단다. 그러면서 너는 어떠냐고 묻는다. 난 이미 한 달 걸었고, 한 달 동안 걸었던 길 중에 오늘이 제일 힘든 것 같아! 하고 얘기하니까 역시 그렇지?! 하고 자신감을 얻는다. 프랑스 안의 GR길은 아름다운지, 방향 표시는 잘 되어있는지, 사람들은 친절한지, 하루 숙박비나 예산은 어느 정도인지 평범한 여행자의 대화가 오간다. 내가 바나나 하나를 다 먹고 다시 길을 나설 때 모두 다시 길을 나선다. 


산등성이들이 어깨 아래로 내려갈 만큼 올라가면 오리손 산장이 나온다. 그렇게 예약이 힘들다는 인기만발 산장이다. 체력이 좋지 않은 분들은 1박 하고 다음날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곳이기도 하며, 생장에서 길을 시작한 순례자들이 한숨 돌리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그 산장에 도착했을 때 H와 Y, L가 이미 앉아서 거의 식사에 가까운 간식을 마친 상태였다. 왜 이제 왔냐고 반갑게 인사하는 이들. 몹시도 귀엽다. 이제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안부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오다니. 신기하면서도 놀랍다.


나는 항상 길을 걸으며 중간에는 쇼콜라쇼 또는 차가운 콜라를 마시곤 했다. 미제의 마약 코카콜라... 나는 이곳에서도 코카콜라 한잔을 마셨다. 한 숨 돌리며 아픈 발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H, Y, L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또 들려온다. 역시. 시끌시끌 미국 캐나다 스위스 3인방이 잔뜩 신나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발군의 큰 목소리를 뽐내고 있었다. 인사를 하니 또 신나게 응답해주는 이들. 넘치는 새로운 순례자 동지들 사이에 익숙한 순례자 동지를 만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반갑고 기쁜 일이었다. 캘리포니아 아저씨는 아주 신나서 난리가 났다. 어제 만났을 때도 우리 이제 봉 슈망 하면 안 되고 부엔 까미노 해야 된다고 연습해야 한다고 하더니만, 오늘 부엔 까미노 하며 들썩거린다. 유전자에 개그가 새겨져 있음이 틀림없다.


다시 가방을 들쳐 메고 길을 이어간다.

이제는 진짜 GR마크와 노란 화살표가 같이 표기되어있다.

어느 순간부터 급한 경사가 아닌 완만한 경사로 길이 이어진다. 걷기에 수월하다. 우리 동네 올림픽공원의 몽촌토성 능선을 걷는 느낌이다.

건너편 산에는 말들이 풀을 뜯는다.

사진은 평화롭지만 바람이 정말 볼 따귀를 때리는 것 같이 불었다. 바람을 이겨내며 걷는 것은 언제든 힘들다. 그래 내가 오브락 고원 가로로 내리는 비바람도 이겨내고 걸었는데, 이쯤이야! 하면서 애써 아픈 다리를 잊어가며 걷는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부어가는 내 다리는 이제 눈으로 보일 정도로 두꺼워진다. 스포츠 레깅스에 등산양말을 신고 발목보호대를 둘렀는데, 발목보호대로 꽉 잡혀있지 않는 정강이 부분이 왼쪽 다리에 비해 점점 부어오르는 게 보인다. 으... 이 정도로 부어버리면 이 보호대 푸는 게 걱정될 정도인데?

하지만 풍경은 마음이 뻥 뚫리는 듯 아름답다.

저 멀리 성모님이 보이는 곳. 이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오스타밧의 지트에서 묵었을 때 만났던 독일 아주머니 순례단을 이 곳에서 만났는데, 내가 인사를 건네니 다른 아시안들과 헷갈린 모양이다. 누구냐고 도리어 물어보시길래 오스타밧이라 답하니 그제야 아- 하신다. 그분들은 식사를 마치고 묵주기도 한단과 성모 성가를 하나 바친다. 그 모습을 보며 점심식사를 마치고 길을 다시 나선다.

양들이 쌀알 뿌려놓은 것처럼 흩어져 있다. 순례자들이 길 위에 듬성듬성 흩어져 걸어오고 있다.

중간에 잠깐 나타나는 순례자들의 안식처, 푸드트럭. 이 곳에서 쇼콜라 쇼를 한잔 한다. 아침에 길을 시작할 때부터 신경 쓰였던 순례자가 하나 있더란다. 스코틀랜드에서 왔다는, 조금 퉁퉁한 청년 순례자. 보통 순례자들은 배낭 하나로 짐을 끝낸다. 손에 무언가 들려있으면 힘드니까. 하지만 그 청년은 왠지 모르게 둥글넓적하고 꽤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꼭 손에 들고 다녔다. 이 둥글넓적가방의 스코티쉬 청년은 그 무거운 몸과 짐들을 다 지고 힘겹게 이 트럭 앞에까지 올라왔다. 내 이어폰이 끊어져 내가 으앙! 하고 슬퍼하자 다른 순례자들이 웃고 있을 때였다. 그 청년은 헉헉 거리며 가방을 두고, 다른 순례자에게 혹시 담배가 있냐 묻는다. 어떤 이가 담배 한 개비를 건네자 반갑게 받으며 하는 말. 저 어제 금연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결심 잊어버리려고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무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혼스보까지는 두 시간 반.

이제 곧, 당신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내리막길이 펼쳐집니다. 그를 경고하는 듯 한 GR 마크와 급격하게 꺾어내려가는 길.

이 비석이 보일 때쯤, 거의 유일하게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 이 곳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물을 보충한다. 물을 따르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봉쥬흐! 하는 인사가 들려온다. 아, 멋쟁이 프랑스 커플, 베로니크들이다. 이제는 조금 내가 친해진 모양인지 얼른 볼을 갖다 대며 비즈 하는 베로니크. 자신들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간단다. 이제 우리 생쟉이 아니라 산티아고라고 해야 해 하고 웃는다. 반가운 사람들. 같이 길을 나선다.

저 소실점의 끝에 베로니크 커플이 걸어간다.

이제는 노란색 화살표가 더 많이 보인다.

풍경이 멋져서 찍은 것이 아니다. 저 사진 하단에 걸려있는 내리막길을 보시라. 우리가 내려갈 길이다.

나는 여기서 실수 하나를 한다. 내리막길이 두 종류,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바로 수직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테니 웬만하면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하라던 봉사자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더랬다. 내리막길을 맞닥뜨렸을 때, 지그재그로 가는 길은 노란 화살표만 있었고 수직으로 내려가는 길은 GR마크와 노란 화살표 두 개 다 있었다. GR길 초반에 몇 번 호되게 길을 잃어버린 게 떠올라 안전한 것을 선택한다고 한 게 수직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내가 발목이 아프다는 걸 잊은 것 마냥. 나는 심각한 발목 고통을 느껴가며 그 길을 빨리 내려왔다. 하... 빨리 내려가는 것도 정말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좀 늦더라도 천천히 갈 것을. 어차피 알베르게에는 자리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참으로 미련 맞은 오늘 낮의 나 때문에 그 후 며칠 동안의 나는 두고두고 고통받는다.

이게 정말 급격한 내리막을 그냥 찍은 건데, 사진은 수평으로 보여서 놀랍다.

땅에 피어있던, 이파리도 없던 꽃. 대체 뭔지 궁금하다. 프랑스에서도 내내 만났던 꽃인데.

이 길을 걷고 있을 때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왔다는 부부를 만났다. 자신들은 항상 걷고 싶었던 이 길을 걸어서 너무 설렌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다리가 너무 아팠던 나는 눈썹을 시옷으로 하고 걷고 있었는데, 왠지 그들 덕분에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대만에서 왔다는 아저씨 네 분이 이 숲에 앉아있어서 심하게 걱정되었지만..


그들을 뒤로하고 론세스바예스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때 한국 아저씨 F도 만난다. 한국 아저씨 F와 나는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성당과 수도원이 함께 있는 이 알베르게는 정말 크다. 호텔이 있고 그 안쪽에 큰 건물이 다 알베르게인데,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정말 깨끗하고 좋다. 들어가는 길에 밀레 가방의 프랑소와즈 부부를 만난다. 호텔에서 묵을 거라는 이 부부는 나에게 알베르게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준다. 알베르게 선착순으로 도착해 침대 번호를 받고 찾아간다. H, Y와 L은 먼저 도착해서 내가 묵는 층 가장 끝쪽에 자리를 잡아둔 터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내 침대에 자리 잡았을 때 침대 아래층에는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아르날도와 인사를 나눈다. 아르날도는 자기가 읽고 있는 순례길 책을 보여주면서, 이 책을 보고 순례길을 걸으러 왔단다. 그러면서 묻는 말. 코드 충전 내가 해도 되니? 그렇지.. 배터리는 생명이지.


빨래가 저렴하다는 H의 말에 지하 빨래방에 가서 맡긴다. 괜찮은 가격. 빨래를 맡기고 바깥에 나가 멘소래담 마사지를 할 요량으로 자리를 살핀다. 왠지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이 계셔서 옆에 앉아도 되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오케이 하신다. 순례자라면 으레 나누는 대화.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언니, 왠지 대화가 찹쌀떡처럼 찰지게 잘 맞아떨어진다. 미소가 푸근한 C언니와의 인연은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지하 빨래방 바깥쪽 베란다에 있는 벤치에서 시작되었다.


H가 성당이 정말 멋있다며 보여주고 싶어 한다. 성당에 들어가 보니 화려하고 멋지진 않지만 어딘가 마음이 울리는 분위기가 우리를 감싼다. 잠깐 성모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후에 H는 나에게 안티푸라민 마사지에 각종 진통제를 3일 치나 선물해 주었다. 한국에서 온 천사 덕분에 나는 좀 더 괜찮은 길을 쌓아갈 수 있었다.


저녁은 알베르게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알베르게 바깥의 레스토랑 겸 바에 랜덤으로 배정받아 가게 된다. H와 Y, L은 다른 레스토랑이라 함께 하지 못했고, C언니와 나는 같은 레스토랑 표를 받은 터라 함께 식사를 하러 간다.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한다. 내가 걸었던 길, 언니와 나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기. 조금 무거운 이야기였지만 길을 걸으며 많이 되새기고 스스로 다독인 덕분에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렇게 편하게, 내 일들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나 스스로에게 놀랐다. 마음이 따뜻한 C언니는 함께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었다. 행복한 저녁식사를 마무리한다.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길. 언니는 성당 미사를 드리신단다. 나도 갈까 고민했지만 돌아가서 다리 마사지를 좀 더 하기로 마음먹는다. 나오는 길에 사과 하나씩 들고 성당으로 가던 미국 캐나다 스위스 3인방도 (디저트로 나온 사과를 안 먹고 챙겨 왔다) 만난다. 인사를 하고 알베르게 0층의 음식 자판기들을 둘러본다. 아르날도가 여기 꽤 괜찮은 것 많다며 자신이 무얼 먹었는지 이야기해준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소파에 앉아 와이파이에 매달려본다. 이제 아루 AROUE에 도착했다는 쟝의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일어난다. 옆의 콜롬비아 커플이 싸우는 것을 배경음악 삼아 책을 읽다가 침대로 돌아간다. 다리의 부기가 가라앉길 기도하며 옷을 뭉쳐 그 위에 올린다. 잠을 청한다. 옆 침대 아저씨의 코골이가 심상치 않다. 쑤욱 빠져들듯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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