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속씀 Apr 29. 2019

순간을 그려낸 영원한 화가들.

그림을 싫어했던 소년이 고흐와 모네를 통해 느낀 이상한 삶의 철학.

삶에 변화가 찾아오면서,

새로운 취미들이 생겨난다.

최근에는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며 바람을 쐬거나,

가사 없는 잔잔한 재즈풍의 음악을 틀어놓고

모니터에 좋아하는 그림들을 띄워둔 채,

가만히 바라보며 홀로 사색에 빠지는 것을 즐긴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요상하고 괴짜 같은 취미지만,

아둥바둥 꿈을 좇으려 끊임없이 달리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소중한,

나만의 자유로운 순간들이다.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줄곧 홀로 집에서 그림을 그리시고는 했다.

나는 어머니와 닮은 것이 정말 많은 아들이지만,

미술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어린 시절 다채로운 색깔과 함께

다듬어지지 않은 어머니의 붓결이,

새하얀 캔버스 위에 거침없이 묻어날 때의

신비로움을 기억한다.

어쩌면 나에게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눈앞에서 탄생하는 마법보다

언제나 나의 어머니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본인이 사랑하는 그림에 몰두할 때만큼은

눈이 부시도록 빛이 났던 한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강렬하게 어린 나의 기억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어머니가,

가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음대 유학을 지원하지 않고

그녀의 그림에 조금만 지원을 해주셨다면,

지금쯤 그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종종 상상하곤 한다.

그녀는 분명히 세상 널리

그녀의 이름을 떨쳤으리라.

물론 그 세상에서도 그녀는,

무조건 나의 어머니여야 한다는 조건 아래 말이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서 그림을 배워보지 않았던 나의 어머니의 그림들은,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가장 빛이 나는 그림들이라 자부할 수 있다.

그녀는 고흐와 모네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미국에서 4년간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인생이 마치

하나의 버스 정류장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한인교회를 다니면서

수많은 유학생 형님들과 누님들 사이에서 자랐다.

누군가는 입학을 했고, 누군가는 졸업을 했으며,

누군가는 결혼을 했고, 누군가는 부모가 됐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경고 없이 내 마음 한 켠에 내려앉았고,

모두 하나같이 기별 없이 내 마음 한 켠을 떠났다.

처음에는 참 마음이 아파 무척이나 고생했지만,

인간의 위대함이 언제나 그러하듯,

나는 줄곧 그런 이별에 제법 익숙해졌다.

다시는 그들을 만나볼 수 없게 될지언정,

가끔씩 불현듯 찾아오는 끊임없는 그리움도,

나는 곧 사랑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부터 일찍이,

나는 멀티타스킹에 있어서

지독한 젬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즐겨하는

'스타크래프트' 라는 게임을 함께 할 때 마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사랑스런 땅 위의 생명체들은,

하늘을 나는 친구들의 괴생명체들에게

발짓 한번 못해보고 끔찍하게

학살당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에 빠지면 빠르게 몰입하고,

누구보다 깊이 몰두하는 나의 일차원적인 면도,

그리 썩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차피 인간이란 자고로, 가진 것에 감사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동물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살면서 내가 사랑하고 매혹되었던

그 모든 것들에게,

내가 당장 죽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살아왔다.

그것이 일이든, 취미든, 내가 맡은 조직이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건 간에.


그림에 지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그림들로 가득 찼다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빠져나왔던 '극악무도한 범죄자'인 나는,

요새 고흐와 모네의 그림들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하고는 하는데,

그들의 거칠면서도

희한하리만큼 몽환적이고 잔잔한 붓결은,

나를 구름에 띄워 그들이 풍경을 그리던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데려다 주곤 한다.

세상의 모두가 극찬해 마지않는 그들이

한 평생 한 것이라고는,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삶의 순간들에서 파생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단지 그 순간을 포착하려고 한 것뿐이리라.

그들이 모든 것을 쏟아내며 그려냈던 풍경들은

비록 그들의 삶 속에서 찰나의 한 순간이었겠지만,

그들의 그림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반드시 6이 나올거라 예상했던 주사위가

외눈박이 눈으로 우리를 조롱이라도 하듯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가 때때로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것들은,

한 순간에 보잘것없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는 한다.

우리는 그렇게 고꾸라지고, 볼품없이 쓰러진 채로

부서진 가슴을 부여잡으며

영원할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어두운 방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좋던 나쁘든 간에,

언제나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 속에서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시간들은 언제나 한 순간이었고,

찰나의 순간이라 여겼던 시간들은

우리의 삶에 영원한 영향을 끼친다.


지금의 영원할 것 같은 행복과 불행도

결국은 찰나의 순간일 것이고,

우리가 크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하염없이 흘려보내는 지금 이 순간들도,

언젠가 돌이켜봤을 때 우리의 삶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미래의 영원만을 쫓기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순간들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맘껏 즐기며 살아 보련다.

혹 아는가.


현재 내 삶이 행복하건 절망스럽건 간에,

이 순간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그려나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멋진 그림 하나,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가게 될지.


나의 어머니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로 그 고흐와 모네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젊은 날의 객기, 혹은 푸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