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타협해야만 하는 백만가지 이유들.
타협해야만 하는 이유로는 백만가지가 있고,
타협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로는
단 한 가지만이 있다.
타협은 때때로 혓바닥이 얼얼하도록
달콤하게 우리를 유혹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매섭게 휘몰아치며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어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출구들만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루빨리 타협하라고.
당신이 나의 지인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지금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있던 간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지금
‘쉴 새 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극심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에.
굳이 이렇게 말할 필요도 없이,
이미 티가 많이 났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만 모른 채 애써 감추고 있었던 것일지도.
최근 나는 극심한 '두려움'과 '고통스러움'은
서로 다른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모두가 경주라도 하듯 앞다투어 인생길의
동서남북을 정하고 나아가고 있는 20대 중턱에,
나는 아직도 갈림길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
나와 함께 뛰던 이들은 이미 모두 지나갔다.
누구는 의사가 되었고,
누구는 대기업의 대리가,
누구는 자영업자가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온 중학교 동창 녀석은
벌써 큰 회사에서 몇년차 사원이 되었다고 전하며
요즘 나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고,
내가 혼자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너털웃음을 지으며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하고는
이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친구야, 이제 그만 너도 정신 차리고 철들자.'
나는 내 어릴 적 꿈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어리석은 이유로,
부모님께서 잘 닦아놓으신 길을
단숨에 버리고 말았다.
그때 그냥 잠깐 타협했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쯤 내 입학 동기들처럼
미국에서 억대 연봉을 벌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20대에 내 집도 마련하고, 외제차도 끌고,
정말로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일찍 결혼도 하고.
듣기만 해도 꽤 멋지고 괜찮은 인생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켠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이유로
나는 타협을 거부했고,
그렇게 타협을 거부해서 내가 얻은 것은
부모님의 눈물과,
할아버님의 한숨과,
주변인들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뿐이었다.
편안한 미래와 넓었던 인간관계를 모두 뒤로 한채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홀로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내 어릴 적 꿈과 유사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정말 닥치는 대로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완벽한 그 무언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속 시원한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꿈을 찾지 못한 채로,
전보다는 조금 덜 번쩍 거리는 길을 걸어야 했다.
내가 분노했던 이유는,
내가 조금 덜 번쩍 거리는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내가 내 꿈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늦었다 생각이 들어
조용히 타협을 준비하려던 참에
1년 전 미국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불현듯 무엇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확실하지 않았지만 나는 단숨에 이끌렸고,
줄곧 그것만에 몰두했다.
전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이미 많이 늦은 나이였다.
나는 부족했다.
한 없이 부족했다.
지금도 너무 부족하다.
내가 최근 4개월 가까이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다.
내 스스로가 아직 너무 부족하고 부끄러우니까.
지금 내 나이에 드는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중에 나이 든 내가 지금의 나와 마주하기 위해
다리를 놓으려고 기록하기 시작했던 글들이,
최근에는 내게 부끄럽게만 다가웠다.
항상 앞서 나가려 하는 내 급한 성격에,
내 자신에게 느끼는
'부족함'과 '뒤늦은'이라는 단어는
내 스스로를 끊임없이 시달리게 만들었다.
자기 전에도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 고민했고,
꿈도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 고민하는 꿈을 꾸었다.
잠을 줄여가며 관련된 글을 찾아보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메시지를 보내며
조언 요청을 해보기도 하고,
면전에서 문전박대를 당해보기도 했다.
내가 끼지도 못할 자리에 괜스레 티켓을 구입해
방문했다가 조용히 참석 후 사라져도 보고,
부족한 돈을 끌어모아 이런저런 프로그램 툴들을 구입해 혼자 실험도 해보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자괴감에 빠져
새벽에 혼자 머리를 쥐어 뜯기도 했다.
모든 게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끊임없는 두려움과 걱정과
극심한 자격지심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변태같은 기쁨이 존재했다.
"그게 뭐하는 건데?"
"그 직업 연봉 엄청 짜. 알고는 있지?"
"경력도 없는데 그 일에 누가 너를 뽑아"
"그 일은 야근에 야근의 연속이야. 후회할걸."
“그때 그냥 그 학교 졸업하지 그랬어”
"뭔 또 이상한 바람이 들어가지고.
그냥 안전한 직장이나 구해.
대기업 공채 시즌도 얼마 안 남았어."
...내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듣곤하는 말들.
얼마 전에 한 기업의 회장님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무엇이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하게 하느냐'라는
질문에, 나는
'아직 객기를 부려도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가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 회장님은 껄껄껄 웃으셨다.
딴 젊은 이들의 답을 들었을 땐
'뭐 나랑 별 다를 게 없네'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저 답변에서 무너지게 되셨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회장님께 거짓말을 한 것 같다.
분명, 내 '젊음'에 대한 정의는 변치 않았다.
단지 분명한 것은,
내게는 사실 잃을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나를 엄청난 사랑과 노력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의 웃는 얼굴과,
내가 쥐어줄 수 있는
띠동갑 동생의 용돈 액수와,
가족들을 해외여행 보내주고 싶은
그 비행기 티켓의 목적지와,
내가 아끼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며 마실 수 있는 술자리의 횟수와,
사랑하는 사람을 나보다 더욱
풍요로운 사람에게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재력과,
내가 나이가 지긋이 들어 뒤를 되돌아봤을 때,
아직 타협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지금의 철없는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을 미래의 내 모습까지.
나는, 잃을 것이 참 많은 사람이다.
언젠가는 나도 지쳐 쓰러져,
끝내 타협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싸울 수 있을 때
기권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후회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나이가 들어 마지막으로 숨을 내쉬기 전에,
도전하지 않았던 젊은 날의 나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왜냐하면,
타협해야 하는 이유로는 백만가지가 있고,
타협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로는
단 한 가지만이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