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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씀 Aug 30. 2018

천재를 이기는 방법.

꾸준함의 재능.

01:42 A.M.

호우주의보가 끊이지 않는 새벽,

생각이 많아져 시계가 없는 자취방에서

노트북을 열자 녀석은 귀찮다는 듯

눈을 뜨며 넌지시 늦은 시간을 알렸다.

학기 초 정정시간이다 보니,

공부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어젯밤 잠을 설친 탓에

나는 하루 종일 학교에서 피로와 싸우다가

집에 와서 저녁을 먹자마자

정신없이 잠에 들었고, 3시간 정도 잠을 푹 자고는

취미로 공부하고 있는 통계학의

하루 할당량을 채우고 나서,

야식으로 군만두를 구우며

중학교 친구 놈의 유튜브 채널을 켰다.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오래된 중학교 동창이 연락이 왔다.

현재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녀석인데,

뉴저지에서의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서

홀로 로드트립을 할 생각이니

여행지를 추천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서슴없이

미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인

재즈의 고향, 뉴 올리언즈를 추천했다.

그 친구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안타깝게도 서로의 스케줄이 맞지 않아

한국에서 보기를 기약했고,

그 친구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되고

내가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자신이 곧 부산에 내려가니 시간이 맞으면

함께 운동이나 하자고 다시 연락이 왔다.

중학교 때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녀석과 나는 이제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

또 한번 이웃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만나 함께 아침 운동을 하면서

그에게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에 관해 물었다.

처음 유튜브 구독했을 때 100명 남짓이었던

녀석의 구독자 수는 당시 15,000명이었고,

1주일이 조금 지난 오늘은 구독자 수가

2만 명을 돌파했다.

기특한 녀석이다.

친구에게 기특하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끼가 넘치고 무엇이든

잘 하던 친구였던 데다가,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잘 이해하고,

어떠한 목표를 세운 후

끊임없이 컨텐츠에 대해 고민하고

꾸준히 매주 같은 시간마다

동영상 두 개를 업로드한다는 놈의 말을 듣고

나는 진심으로 존경의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로 점심 약속이 있어 길게 보지는 못 했지만,

운동 후 바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우리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고

남자 둘이서 동네 산책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인터뷰를 하는 나의 습관이 나와

친구의 앞으로의 계획, 크리에이터로서의 장단점과

주의할 점, 유튜브 수익구조,

슬럼프 시 극복 방법, 궁극적인 비전들 등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웃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한번 더 현대 사회에 관하여,

그리고 한국의 상황에 대해여

많은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다.


요즘 들어 내가 자꾸만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성공의 핵심 요소는,

'꾸준함'이라는 것이다.

천재를 이기는 방법은,

천재를 먼저 가게 두라는 말이 있다.

천재를 같은 선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하더라도,

천재의 속도는 이미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인간으로서 부딪히게 되는 벽을

천재가 마주하게 되면,

그래서 천재가 다른 길로 가거나

포기를 하게 되거든,

당신은 꾸준히 당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결국 그 벽을 만나 넘을 때,

마침내 천재를 이기게 된다고.


내가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인 교회에서 만난 존경하는 형님 한 분께서

한국에 잠시 들어오셔서

내게 고기를 사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속씀아,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매일 성경 책 한 장을 읽든,

매일 1km를 뛰든, 매일 일기를 쓰든.

하다못해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어도 좋다.

네가 즐겨하지 않는 행동을

매일 꾸준히 하는 습관은

너의 인내심을 기르게 할 것이고,

그것이 곧 너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그 형님은 내가 군대를 들어가려고

머리를 밀던 철없을 나이에

이미 대형 소속사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음악 차트 1위에 자신의 곡을 올려놓겠다는

어린 시절 꿈을 이룬,

정말이지 존경스러운 형님이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찻집에서 나누다가,

아쉽게 헤어질 때쯤

그 형님께서는 대학로 한복판에서

내 주머니에 무언가를 찔러놓으시고는

지하철 입구로 뛰어들어가시며

"여자 친구(당시) 있을 때

돈 없으면 안 돼 임마"라는 말을 남기고는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갑작스레 돈을 받아버려 겁이나

액수를 바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형님의 마음에 가슴이 미어져

바보같이 골목 한복판에서 울먹였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집에 들어와 벌벌떨며

주머니를 확인해 보았더니

상상도 못 했던 큰 액수인 5만원권 4,5장 정도가

고이 접혀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실 그 때 받았던 신사임당 몇 장보다

당시 형님이 주셨던 '꾸준함'에 대한 조언이

더욱 귀중한 것이라는 것을,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꾸준함과는 조금 거리가 먼 나지만,

나는 '꾸준함'에 있어서 천재인 사람의 아들이다.

아버지께서는 말 그대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1시간 이상 등산을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한, 최근 들어 무릎이

조금 안 좋아지시기 전 까지는

태풍이 불지 않는 이상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단 하루도 빠짐없이 산을 타셨고,

열악한 기후에도 산을 타시려는

아버지의 안전을 우려하시어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시며

아버지와 종종 싸우시기도 했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그저 등산이라는 취미를

사랑하시는 분이라 생각했으나,

군대 훈련소에서 불침번을 서던 새벽 세시에,

그것이 사실은 당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본인의 건강 관리를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으신

아버지는, 웃으시며 당신의 아들이

이제는 철이 들었나 보다고 말씀하셨다고.

아버지께서는 매일 새벽 5시에

칼같이 일어나시고는

새벽 기도를 다녀오시고,

헬스장에 가서 한 시간 반의 운동을 하신 후

8시에 집에 들어오셔서

커피 한잔과 신문과 함께

아침을 드시고는 출근을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출퇴근하실 때마다

영어로 된 뉴스 팟캐스트를 들으시고,

외식을 나가면 항상 단어장을 들고나가

단어를 외우셨으며

(어머니가 싫어하셔서 더 이상 안 그러시지만)

저녁식사 후에는 '건강을 위한'

레드와인 한 잔을 하신다.

내가 집에서 아버지를 볼 때 아버지께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

새로운 학문을 배우시는데 열중하신다.

사실 내가 지금 취미로 배우고 있는

통계학 원서 역시 아버지께서 내게

몇 달째 수차례 권하시던 책이었다.

'매일 10페이지씩 읽으면

한 달 반이면 일독하게 될 것'이라며

강경하게 권하시어 시작하게 되었지만,

의외로 흥미로워 며칠 안 되었지만

매일 꾸준히 읽어보려 하고 있다.


올해 운동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는

생활의 패턴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아직 서울에 와서 헬스장을 등록하지 못했지만)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미적인 이유보다

들기 싫은 무거운 무게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며

쉬고 싶고 이제 그만 편해지고자 하는 욕구에

반항할 때 길러지는 정신력과,

그로 인해 찾아오는 몸과 마음의 맑아짐 때문이다.

또한, 하루에 무언가 나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하였단 생각이 들다 보니,

어떻게 하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더욱 효율적으로 써서

나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고,

매일 무언가를 꾸준히 하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면서

발전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귀국하자마자

매일 아침마다 운동을 가고

더위를 뚫고 도서관을 다니는 나를 보시며,

'조금씩 징그럽게 아버지를 닮아간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시절, 시간을 흥청망청 쓰고 나서

찾아오는 자괴감에서 도피하기 위해

더욱 한심한 선택들로 내 인생을 낭비하며

악순환에 갇혀 살았다.

나는 그때의 내 자신이 너무도 두렵기 때문에,

그 두려움이 나를 조금씩 일정한 패턴과

약속들로 스스로를 채워나가게 하는 것 같다.

자주자주 내 자신을 체크업 할 수 있도록.

그때의 나로 돌아가지 않도록.

크고 대단한 한 걸음이 되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내 끼가 넘치는 오래된

유튜브 크리에이터 친구를 바라보며,

내가 존경하는, 이제는

한 가장이 된 멋진 형님을 바라보며,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내 자신을 체크업한다.

내 자신이 오늘은 욕구에 얼마나 항복했는지,

적어도 오늘 하루 나와의 약속은 지켰는지.

오늘 하루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가 그린 미래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될 테니.

오늘은 자기 전, 거울을 보며

조금 더 두려움을 키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3:27 A.M.

오늘 아침에 수업이 있다. 이제 그만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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