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런 적 없지?
작가 회식이자 막내 송별회.
교양도 아닌 무려 다큐 팀에서 작가를 시작해 처음으로 예능에 넘어온 우리 팀 2년 차 막내는 결국 예능의 전투적이고 변화무쌍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늘 관둔다.
예능은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다 보니 따라가기가 힘들고 그래서 자신이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 자괴감에 빠진 23살. 좋은 선배들에게 많이 배웠는데 자신이 모자라서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막내를 위해 자신감 고취 프로젝트 <너는 이런 적 없지?> 코너를 열었다. 각자 쌩막내(*팀의 가장 막내) 시절에 저질렀던 최고의 실수를 고백하는 코너였다.
먼저 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녹화날까지 출연자에게 녹화가 있는 걸 말하지 않아서 출연자가 녹화장에 못 왔던 적이 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번째는 자다 일어난 출연자가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와서 간신히 녹화를 떴고, 두 번째는 결국 녹화 세팅을 다 한 후에 녹화가 취소됐다. 그때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다. 당시 선배가 전화로 소리를 지르는데 나는 정말 죽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다른 작가들도 이어 말했다.
녹화날 소품으로 준비한 요거트를 발로 차 엎어서 사람들이 보는 스튜디오 한복판에서 옷에 요거트가 다 묻거나 말거나 손으로 요거트를 쓸어 담았다는 이야기,
녹화 전날 프롬프터 400페이지를 만들고 잤는데 스튜디오에서 열어보니 다 날아가고 빈 페이지만 있었다는 이야기,
생방송 당일 아침까지 자느라 선배들 전화를 못 받고 그대로 방송을 펑크 냈다는 이야기,
생방송날 출연자 스탠바이를 제때 안 시켜 관객석을 뚫고 출연자를 무대로 올렸다는 이야기.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아찔한 실수담을 고백하며 마지막에 "넌 이런 적 없지? 그러니까 너는 일을 못하는 게 아니야"라고 꼭 덧붙였다. 듣는 내내 '그런데도 아직 살아남아 있는 건가?' 하는 눈을 하고 있던 막내는 "네.. 아직 그런 적은 없어요" 했다.
그래, 그러니까 너는 일을 못하는 게 아니야.
작가를 계속할 거냐는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 나중에 꼭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자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