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고 가끔 보자

방송국에서의 인간관계

by 인절미

4년 차 막내였을 때, 동갑내기 막내 조연출과 밤새 일하고 회사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게 큰 위안이었다. 매주 월요일 새벽 1등으로 출근해 시청률 자료를 마무리할 즈음 편집실에서 밤샌 친구가 나타나 같이 아침을 먹으러 가던 것 또한 큰 위로였다. 그럴 때면 대화 주제는 주로 누가 먼저 이 프로그램을 그만두느냐. 내가 먼저 탈출했고 친구는 그 이후로도 오래 남았다.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실제로 만난 건 11년 만이었다. 어릴 때 함께 동고동락한 사이가 주는 어떤 동질감이 있는 거 같아. 어색하지 않았다. 옛날 얘기와 사는 얘기들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막내 작가와 조연출, 얼굴 붉히기 딱 좋은 관계인데도 한 번도 안 싸우고 서로 으쌰으쌰 잘 버틴 것이 새삼 대견했다.

촬영장에서 내가 출연자 아기들 손잡고 갈 때 옆에서 유모차를 끌던 친구는 이제 제작사 대표님이 되었다. 언젠가 같이 일을 하자. 네가 나를 꽂아 줘야지 나 친한 작가 너밖에 없어. 네가 날 꽂아 줘야지 너 대표잖아. 서로가 서로의 득을 볼 생각만 했다. 열심히 일하고 가끔 보자며 쿨이별하고 집에 돌아왔다. 오는 길에, 나고 들고가 많은 이곳에서 이 정도면 꽤나 두터운 사이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때 친구가 없었다면 더 많이 힘들었겠다, 하고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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