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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May 22. 2023

- 면봉 -

괜찮겠지 하면 괜찮지 않다

20대 초반에 고막이 한 번 터진 후로,

조금만 피곤해도 바로 귓병이 앓았다.

일단 귀에 찰랑찰랑 물이 차는 느낌이 들고,

귓구멍 안이 근질근질하다.

욱신욱신한 통증도 느낀다.

느끼는 증세에 비해 보기엔 멀쩡해서,

이비인후과에 가도 ‘괜찮아요’라고 넘겨버리기 일쑤.

결국 심하게 물이 차고 귀가 헐고 난 후에야

치료가 시작됐다.

나 역시도 이게 무슨 병명인 줄 몰라서

맥없이 앓기를 몇 년.

다행히 ‘외이도염’입니다라고 진단을 해준 의사를 만났고,

(아니 이게 그렇게 진단받기 어려울 일이야?)

‘증세가 가벼울 때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세요.’라는

처방도 얻었다.

그래서 귓병의 신호가 오면 면봉으로 귀 안 구석구석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른다.

그러면 대체로 금방 가라앉고, 가렵다고 긁지 않으니까 덧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게 면봉은 필수품이다.

면봉이 없으면 귓속에 약을 꼼꼼히 바를 수 없으니까.


면봉이 단 한 개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똑 떨어졌다.

아직 가까운 마트는 열려 있었고, 특정 면봉을 선호하지도 않으니까, 아무거나 지금 사 오면 됐었다.

그러나 나는 다 씻었고, 밤이고, 피곤해서 졸리고,

무엇보다

한동안 외이도염을 앓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을 거 같았다.

나가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내게 차고 넘쳤다.

하지만 나는 그 밤, 그 이유들을 뒤로하고 면봉을 사러 나갔어야 했다.

그날 새벽 찾아온 외이도염은

내 귓속을 계속 간지럽히며 밤새 괴롭혔다.

항상 그렇다.

꼭 괜찮겠지 하는 때가 바로 괜찮지 않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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