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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Jun 19. 2023

- 연산 -

빠른 수긍, 공손한 사과


방과 후에 하던 공부를 아침시간을 옮겼다.

오후 3~4시쯤 간식 먹고 공부를 했었는데,

그 시간에 내가 너무 졸려서 항상 낮잠을 자니까

아이들 공부를 제대로 신경 써줄 수가 없었다.

모르는 문제가 생겨도 저녁 시간 늦게나 봐줄 수 있었고,

아이들이 몇 과목 공부를 빼먹어도 귀찮아서 그냥 넘겼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내놓은 것이

‘아침 한 시간 일찍 일어나 공부를 미리 하자’였다.

원래 아이들보다 한 시간 정도 먼저 일어나 혼자 시간을 보냈는데,

어차피 긴 방학도 끝났고, 아이들 학교 가면 개인 시간 충분히 보낼 수 있으니까 괜찮겠다 싶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따라와 줬다.


공부 과목들 중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연산이다.

어느 날은 쉬워서 후루룩 풀기도 하지만,

막히기 시작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 끙끙 앓기도 한다.

그래서 오후 공부 때도 자주 빼먹던 게 연산이었다.

학교 끝나고 와서 해도 힘든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안 그래도 하기 싫은 머리 아픈 연산을 하자니 아이들은 몸이 배배 꼬였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두 개의 세 자릿수를 더하고 있는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는 표정을 지었다.


“더하기는 너무 어려워. 빼기로 했음 벌써 누나보다 빨리 끝났을 텐데.”


“야, 난 곱하기거든?”


“곱하기는 쉽잖아!”


구구단 이제 겨우 깨쳤으면서 서슴없이 누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발끈한 누나가 현재 풀고 있는 연산 문제를 풀어보라고 건네줬는데,

무려 두 개의 세 자릿수를 곱해야 하는 문제였다.

겨우 두 자리와 한 자리를 곱하는 수준인 아들은 깜짝 놀라서 저절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누님!”


재빨리 공손한 사과를 건네는 동생을 보고 누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콧방귀를 뀐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이가 참 좋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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