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즐거웠다면 됐어
친구들과 시내 오락실을 놀러 간 날 딸은 처음으로 펌프(펌프 잇 업)를 했다. 재미있어 보여서 시도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첫판에서 바로 게임오버.
화려한 게임 조작화면을 발판을 이리저리 눌러 작동시켜야 하는데,
처음 하다 보니 영어로 된 글자가 뭔 말인지 알 수가 없고,
노래도 잘 모르는 곡투성이라 대충 아무렇게 눌러서 어렵게 설정이 돼버렸나 보다.
“엄마 펌프 좀 할 줄 아는데. 같이 해줄까?”
“펌프 할 줄 알아?”
딸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펌프나 디디알 같은 발판게임을 엄청 밟고 다녔었다.
한 친구는 오락실 주관 디디알 대회 나가서 상품을 쓸어오는 발판게임 고수였고,
또 다른 친구는 살 좀 쪘다 싶으면 한 달 신나게 밟아서 10킬로씩 빼버리는 마니아였다.
한 친구는 오징어처럼 흐느적대는 듯 하지만 더블(발판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하는)로 끝판을 가볍게 클리어했다.
친한 친구들이 괴물 같은 게임고수들이라, 나는 그들의 쩌리 정도였지만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2000년대는 발판게임이 인기몰이를 할 때라 펌프 기기 위에 동전을 얻어놓고 차례를 기다리며 고수들의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었는데, 오랜만에 가본 오락실은 펌프 주변은커녕 공간 전체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지역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락실이 썰렁해서 신기할 정도였다.
딸아이 레벨을 이지모드로 맞춰주고, 곡도 가장 쉬운 곡으로 골라줬다.
2인용으로 설정되어 있으면 한 명이 실패해도 계속 같이 할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엄마가 깨줄게’라는 말이 무색하게 딸이 생각보다 잘해서 4곡 모두 실패 없이 클리어했다.
너무 오래간만에 하는 나는 레벨을 낮췄는데도 마지막 곡에서는 다리가 꼬여버렸다.
뒤에서 보던 남편이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며 비웃었는데, “직접 해봐!”라고 되받아쳤다.
노래가 끝나길 기다리던 아들은
“엄마! 나도 할래!” 하며 발판 위로 누나를 밀치며 올라왔고,
나는 덜 풀린 다리로 다시 4판을 달렸다.
다리는 미친 듯이 후들거렸지만,
그래 뭐, 니들이 좋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