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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Sep 21. 2023

- 대왕 끈적이 -

끈적끈적 왕끈적


아들은 몸 전체가 다 끈적인다. 아침에 등교할 때는 분명 보송한데, 돌아올 땐 이건 뭐 슬라임도 아니고 끈적끈적. 닿기가 겁날 정도다. 땀이 많은 편은 아닌데도 개처럼 뛰어다니니 답도 없다. 아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든 불만은 없다. 운동장이든 교내 놀이방이든 아니면 교실에서라도 신나게 뛰어놀았겠지.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피부에 젤리 커버 같은 방어막이 생겼을 테고. 그런 채로 엄마를 만나면 좋다고 찰싹 붙는다.

팔뚝끼리 닿을 때도, 손바닥으로 내 손을 잡을 때도, 으악. 끈적인다.


“아들 왜 이렇게 끈적여.”

“몰라!”


상큼하게 모르쇠를 주장하는 아들은 ‘엄마 좋아’를 연발하며 몸을 밀착시킨다.


“야, 야. 떨어져라. 너 끈적여서 기분 나빠.”

“안 끈적여~, 기분 안 나빠!”


내가 아들을 밀어내면 되레 불만스럽다는 듯 볼이 불퉁해진다.


“아니 정말 너 끈적이 같아. 손을 닦아, 샤워를 하라고.”

“귀찮은데. 어차피 로잉머신 하면 씻어야 하잖아.”


하교 후 아이들은 운동으로 로잉머신을 15분 당겨야 한다. 운동할 때 심심하지 말라고 유튜브를 허용해 줬고, 이때만이 유일하게 자유롭게 영상을 골라 볼 수 있는 시간이라 거르지 않고 매일 한다. 꽤 땀이 나기 때문에 끝나고 바로 샤워를 하는 게 루틴이다.


“그럼 물이라도 찌트려. 비누칠은 운동 끝나고 하고.”


어느새 우리 집 공용어가 된 부산사투리까지 사용해 가며 샤워를 종용했지만 아들은 꿈적도 안 한다. 그래도 집에 들어오며 손은 씻었지만 날씨 탓인가 또 금방 끈적끈적해졌다.

운동하기 전에 끝내겠다고, 문제집을 펼쳐놓고 풀기 시작했다. 푸는 중에도 아들손에 닿는 문제집이 쩌덕쩌덕 소리를 내는 게 영 거슬렸는데, 채점 중에는 기어이 손바닥에 들러붙은 문제지가 ‘쫙!’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아니 이게 왜 찢어졌지?”


아들은 손에 붙은 종이를 보며 당황했고,


“왜겠니, 네가 끈적거리니까 그렇지!”


나는 또 버럭 댔다.

내 몸에 붙어 끈적, 종이에 붙어 끈적, 여기저기 끈적거리고 다니는,


“야-이, 대왕끈적이!”


아들을 향해 일갈을 날렸다.

그냥 끈적이보다 더 강한 ‘대왕’을 붙였더니, 아들은 이 별명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다. 대왕이 붙었으니 어쨌든 보통 레벨 이상으로 강하잖아? 또 모르는 척 싱글싱글 “괜찮아~.”를 연발한다. 저 넉살에 이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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