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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Sep 11. 2023

- 양심 -

양심이 요동칠 때

숙제를 챙겨하도록 집에서 지도는 하고 있지만, 숙제 안 해서 혼나는 건 아들이니까 스스로 챙기라고 크게 신경은 쓰지는 않는다. 그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숙제 있어?”하고 묻고, 학교 가기 전에 “숙제했니?”하고 묻는 게 전부다. 아이가 숙제를 어려워해서 들고 오면 푸는 걸 도와주긴 하지만 그날 배운 걸 숙제로 가져와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등교 전 아침을 먹는 아들에게 평시처럼 숙제했냐고 물었다.


“응, 했어. 그리고 가방에 챙겼지.”


대답이 기특해서 칭찬을 해주었다.


“미리 챙길 생각도 하고 기특하네.”


“레고 가지고 놀고 있는데, 자꾸 양심이 요동을 치는 거야. 공부도 다 했고, 피아노 10분도 쳤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니까 숙제를 안 한 거 있지.”


“양심이 요동을 쳐?”


“응, 막 울렁울렁하더라고.”


하던 걸 안 하면 불안했던 게지. 잘 만들어진 습관의 효과였다. 하지만 이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 했다. 숙제를 안 해서 양심이 움직였던 날은 많지 않았다. 아침에 안 할 걸 발견해서 집에서 나가기 전 허겁지겁 10분 만에 후루룩 풀고 갈 때도 있고, 그마저도 시간이 안 나면 들고 가서 9시 수업 전에 푼 적도 많다. 아직은 아이 혼자 꼬박꼬박 챙겨서 하는 걸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안다. 어른인 나도 어려우니까. 힘들게 만든 좋은 습관이라도 조금만 해이해지면 사라진다.

그래, 초등학생인데 뭘 기대하랴. 엄마가 기대를 내려놓아야 서로 스트레스가 없다. 그래도 숙제 때문에 양심이 작동해 주니까 좋을 때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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