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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Sep 04. 2023

- 탈장 -

탈장과 똥배 사이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의 아랫배에 혹 같은 게 생겼다. 마른 몸에 헐렁한 옷을 입어도 그 부위가 튀어나온 게 보여서 깜짝 놀랐다.


‘너무 튀어나왔는데. 배꼽이 밀려 나왔잖아.’


배를 눌러보며 아프냐고 물었는데 아프지는 않단다. 비슷한 부위에 혹이 생겨서 탈장수술을 받은 조카아이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탈장인가?”


생각과 동시에 입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탈장이 뭐야?”


그 말을 들은 아들이 물어왔다. 네 몸에 문제가 생기는 거라면 너도 알아야 하겠지.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장벽이 찢어져서 그 틈새로 장이 튀어나오는 거라고.

나와 딸도 덩달아 웃옷을 걷어올리고 아랫배를 보며 아들과 비교해 봤다. 딸과 나의 배는 찰떡 같이 닮아서 툭 튀어나오는 모양이 같았다. 아들 배도 비슷한가? 이렇게 보니 저 정도는 원래 나오는 듯하고.

괜찮음과 위험함의 경계를 왔다 갔다 고민하던 중에 퇴근한 남편이 보고는 내일 당장 병원에 가보라고 엄포를 놨다. 그 후로 병원을 어딜 가야 하나 탈장 수술은 어디서 받아야 하나로 설전을 벌였다. 서울이나 큰 도시로 이동해야 해서 고려해야 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수술이 화두에 오르자 아들은 겁을 먹었다.


“엄마 나 수술해?”


“응. 탈장이면. 탈장은 수술해야 해.”


“수술 아파?”


이전에 다래끼 수술도 정말 아파했던지라 수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무서운 모양이다.


“아들, 전에 기침 터졌을 때 수액 맞은 적 있지? 그 수액 바늘 들어갈 때만 아파.”


“그 거 좀 아프긴 한데 참을 만 해.”


“그렇지? 수액 바늘 꽂아놓으면 수술할 때 그거로 마취약 넣거든?”


아들 팔을 잡고 주사 놓는 흉내를 냈다.


“그러고, 자~ 마취주사 들어갑니다. 숫자 세세요, 할 거야. 세어봐.”


“하나, 둘... 셋?”


“네~, 수술 끝났습니다.”


“정말?!”


“그래. 마취하면 수술받을 때는 기억도 없어. 아프지도 않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아들을 일단 안심시키고 다음날 일찍 소아과에 갔다. 나이가 지긋한 경험 많은 의사에게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베드에 누운 아들 배를 촉진한 후 힘을 줘보라고 했다.


“최근에 체중이 좀 늘었나요?”


배를 눌러보던 의사가 물었다.


“일 킬로 정도 늘은 거 같기는 해요.”


“탈장은 아니에요. 탈장은 힘주면 불뚝 튀어나오는데 아무것도 없지요?”


의사의 진단이 내려왔다.

곧바로 아들의 입에서 안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 모두를 며칠간 공포에 몰아넣었던 저 불룩한 덩어리가 똥배였구나. 그래도 탈장이 아니라니 이제 사랑스러워 보인다.

다시 평화로운 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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