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나의 노인들
*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를 향한 리뷰라기 보다 지극히 주관적인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인물이 하나 없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매회마다, 영화 한 편이 끝나는 듯 마음이 폭풍 쳤다. 감정소모가 너무 커서 드라마를 내리 시청한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일상생활이 버거울 정도로 울적해지곤 했다.
한 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각자의 인생부터 드라마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맞고 산 어머니에 대한 연민, 장애인이 된 남동생, 남편과 친구의 불륜, 유부남과 불륜에 빠진 하나뿐인 딸, 그 딸의 인생에 간섭하고 집착하며 다다른 인생의 황혼에서는 덜컥 간암을 선고받는다. 16부작으로 내리 진행될 수 있을 법한 이 이야기가 난희(고두심 분) 한 사람의 인생이다.
그녀의 딸 완(고현정 분)은 장애인과 유부남 만은 안된다는 엄마 난희의 말을 따라, 눈 앞에서 장애인이 된 연인 연하(조인성 분)를 잔인하게 버리고 친구 아닌, 연인도 아닌 관계로 지낸다. 연하를 잊기 위해 완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유부남, 동진(신성우 분)이었다. 위로였던 감정은, 친구 이상이 되고 너무 멀리 가 버리기 전에야 완은 다시 연하에 대한 감정을 찾는다. 엄마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찾으려, 연하에게 떠나려는 길 문턱에서 엄마의 간암 진단 소식을 듣는다. 친구같은 엄마의 무던한 사랑, 그것을 넘어선 때때로의 집착, 그것을 쿨하게 견디며 산다고 믿었던 인생. 완은 엄마에게 서른 일곱이 되어서야 자신의 인생에 더이상 간섭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를 수 있게 되었다.
태중 아들을 잃고, 딸만 낳은 죄인으로 시어머니에게 머리채 뜯겨 가며 살던 정아(나문희 분)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갑갑한 석균(신구 분)의 세계 여행 일주 약속만을 믿고 산 세월을 통탄하고 석균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정아를, 자신이 모르고 지었던 죄를 되짚어 볼 수 있게 되었다.
한순간에 다리를 잃은 연하는, 그 이유로 사랑하는 연인마저 잃는다. 그녀에 대한 추억을 조금도 정리하지 못한 채 3년 전에 멈춰서 완을 사랑한다.
영원, 충남, 희자, 순영, 기자 심지어는 민호까지 아프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며 스쳐간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우정, 사랑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드라마가 유달리 아픈 이유는 주인공들의 인생이 모두 상처 입은 채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 상처에 대해 노인들은 담담하다가도, 무너져 내리고, 때론 진하게 웃는다.
서술하기 벅찰 정도로 가득 들어 찬 이들의 인생 그 자체로 드라마가 진행된다. 스토리 라인이 어쩌면 이렇게도 아름다운지, 나는 작가의 시선으로 작품을 보려 하다가도 그저 노인들을 이모로 곁에 둔 또 다른 완으로, 드라마와 함께 흘러간다.
나는 이 드라마가 참 아프다. 한 회 씩 아껴보며 16회까지 맞이한 순간 나는 어느새 주인공들과 동화 되었다. 그들의 인생에 기운을 얻고 상처 받으면서도 나도 어느새 울고 웃는다. 그리고 그들을 오래 잊을 수 없겠다고 깨닫는다.
절망의 순간에도 농담을 할 수 있는 여유, 6~70대가 바라보는 3~40대의 청춘, 한명도 빠짐없이 내게 애틋해진 노인들.
그리고 완이에게 한가지 하고 싶은 말. 완아 너는 연하가 상처 받는 일에 너무 무디다.. 그래서 연하 역시 내게 너무 아팠다.
아직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몇 가지 당부하고 싶다. 한장면 한장면 꼭 아껴보기를, 되도록 혼자 보고 그 감정을 함께 나누기를.
이 드라마를 (종영은 이미 오래됐으나 개인적으로) 떠나보내며 아쉬운 마음에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