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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Sep 07. 2018

전남친, 전여친에게 문자를 하게 되는 밤

지인들의 연애상담을 통해 들여다 본 과거의 나

사랑이 기록되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시간도 축적이 되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이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고, 아무나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나는 가끔 어른인 척 행세를 할 때가 있다.
  
특히 미성숙하다고 느끼는 타인의 연애를 볼 때,
  
나는 자꾸만 그들을 가르치게 되곤 한다.
  
늦은 밤 엑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하는 마음을 무시하고 이번 사랑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절규를 무시하고 “내가 나를 이렇게 많이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혹은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나 많이 사랑할 수 있을까?” 따위의 말들을 무시한다.
  
그럴 때의 종종 냉소적이라는 평을 듣곤 하는데, 나는 냉소적인 인간이 아니다.
  
단 한 번도 연애에 있어서 냉소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왜인지 연애는 나의 전부였던 시절이 많았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나의 세상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애인에게만 모든 시간과 돈과 마음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때 맞춰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도 잘 가지 못했고, 대학 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데이트 비용을 대고 치장을 하느라 해외여행 한 번을 가보지 못했다.
  
애인과의 다툼으로 지구가 무너질 것 같은 밤이 있었고, 생각할 시간이라도 한 번 가지게 되면 친구들을 붙잡고 술을 마시며 울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연애를 놓지 못했다.
  
자주 착각했던 것 같다. 이 연애가 참 행복하다고.
  
남자가 나를 보며 웃는 순간이 좋았다. 손을 잡고 걷는,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일이 행복했다.
  
그래서 나를 향해 모진 말을 하던 얼굴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식사를 하는 너를 바라보는 일을, 늦어지는 답장을. 애써 ‘무시’했었다.
  
그 때 내가 무시해야 했던 것은 나를 비집고 들어오는 불행이 아닌, 너여야 했다. 나는 그러질 못했다.
  
함께 걷다 예쁜 여자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며, 애인이 저 여자에게 반하면 어쩌지? 생각했던 비참한 나를 지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고 나니 남은 것은 실연의 상처였다.
  
애인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떠났다. 나와 연애 중에 썸을 타던 여자로 갈아탔다.
  
나는 그러지 않았는데, 우리 관계에 충실했는데.
  
내가 충실하게 자리를 지킬수록, 나의 애인은 쉽게 이별을 말했다. 지나가는 여자를 쳐다보고, SNS에 함께 찍은 사진을 아무 말 없이 모두 내렸다.
  
그 관계에 홀로 서 있는 건 어느새 충실한 나뿐이었다. 둘이었던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모든 문제는 객관적으로 애인을 향해 있었는데, 나는 나를 탓했다.
  
내가 매력이 없어서, 내가 잘못해서 애인이 떠난 줄로만 믿었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이들 역시 지금 그 단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로써 엑스에게 연락하며 흑역사를 창조하고, 매달리고, 이미 끝난 관계에 목을 매고 있다.
  
그 사람이 왜 당신을 떠났는지, 당신은 정말 모르는가.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다.
  
원래 연애라는 것이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러니 추억할 게 없어서, 친구로도 지낼 수 없어서 라는 명목으로 미련을 남겨서는 안된다.
  
좋은 자리로 좋은 기운이 간다. 좋은 사람은 좋은 곳으로만 간다. 좋은 사람이 올 수 있도록, 좋은 품을 다져놓아야 한다.
  
나는 그 말을 지나간 연애들을 통해 배웠다.
  
나를 불안하게 하던 사람들은 모두 지금 나의 곁을 떠났다. 추억이라고 포장하며 그나마 몇 장 가지고 있던 사진도 삭제했다. 이제는 조금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는 조금도 예쁘지 않았다.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단계이다.
  
나의 전 단계를 걷고 있는 나의 당신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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