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의 사진을 발견한 오후
요즘은 인화된 사진보다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옮겨놓은 카메라의 사진을 더 많이 보지만 인화된 사진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진 몇 장은 꼭 프린팅 하여 갖고 있다. 그 사진이 헤어진 연인을 담고 있는 경우, 어느 때는 처치곤란이 되어버린다.
사진은 참 묘한 힘을 갖고 있어서 그 순간이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것 처럼 느껴진다. 이사를 준비하다가 오랜 책장을 정리하다가 엑스 보이프렌드가 웃고 있는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 사진을 응시했다. 존재조차 잊고 있던 사진이었다. 이제는 얼굴도 떠오르지 않던 희미한 사람이었는데, 사진에 들어찬 이목구비가 마치 어제라도 안부 인사를 건넨 듯 익숙한 표정이다.
인물 사진의 경우 버리는 일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은데 찢어서 종량제 봉투에 넣어야 할 지, 유행가 가사처럼 태워야 할 지,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스마트폰 속 사진은 간단히 딜리트 버튼으로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데 현상 된 사진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고 퍽 찝찝한 감정을 동반하기도 한다.
아마, 그 때도 어쩌지 못하고 이 곳에 방치해 둔 것이리라 짐작한다. 대다수의 연인들이 'Zero(0)'의 감정으로 이별하지는 못하니까 이 사진을 처리하는 일이 당시에는 버겁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과거의 나를 이해한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해결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한 번 쳐다본 사진은 계속해서 눈에 담게 되고, 어느 순간 눈에 익어버린 사진이 그새 또 먹먹해진다. 그 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가. 어떤 뜨거운 감정이 우리를 휘몰아쳤던가. 해사하게 웃는 엑스의 얼굴과 그만큼 빛났을 나의 연애가 문득 아련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추한 얼굴로 헤어졌었다. 몇 번 째인지도 모를 이별이었다. 후에 너는 그것이 정말 마지막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아득한 눈으로 회고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소리 지르고, 싸우다, 어느 날 바닥나 버린 나의 사랑을. 그리고 애초에 끝났을 너의 사랑을.
그런데 이제와 사진 속 너의 얼굴에는 조막만한 애증도 남아있지 않고, 그저 생기 가득했던 낯부끄러운 연애 감정만이 떠오른다.
전생처럼 먼 엑스의 목소리가, 언젠가의 나를 살게 했다. 그 시간을 보내며 나는 한 뼘 정도 자라나지 않았던가 생각한다.
결국 사진을 건드리지 못 한 채 과거에서 빠져나왔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도 휴대전화 속 엑스의 흔적을 정리 못 한 이들을 예의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한 경험이 있던 나로선 모순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연애'라고 우러러보거나, 한 편으로는 비아냥댔던 그 감정을 드디어 이해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까맣고 작은 눈동자에 비친 나를 향한 감정이 애틋하여서, 그 시절의 내가 선명하게 떠올라서, 그 사진을 조금 더 갖고 있기로 한다. 나도 모르는 추억 상자 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그런 시절이 있었지 마음으로만 알고 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