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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Feb 15. 2019

당신과 헤어지고 목을 매려다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당신에게 보내는 2번째 답장

당신과 헤어지고 목을 매려다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 앞 느티나무는 매일 아침 어린이집 등원 차량들이 정차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옥상에서 몸을 던질까 하다가 이내 관뒀다. 살점이 튀고, 피가 튄 광경을 기어이 치워야 할 환경미화원들에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수면제를 처방받는 일은 끝까지 고민됐다. 첫 번째 이유는 차분하게 오랜 시간 불면증 환자 연기를 통해 약을 모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더 큰 이유는 처방해준 약이 결국 죽음에 쓰이게 되면 혹시라도 경찰 조사들에 불려다니진 않을까, 의사를 걱정한 탓이었다.     


나 죽으려는 순간까지 왜이러니.     


비참해서 웃음이 났다. 나는 너를 배려했던 것처럼, 죽음에 서서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느라 내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쉬는 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커터칼을 하나 샀다. 손목을 그을 요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텅 빈 핸드백 안에서 달그닥 달그닥 커터칼 상자가 굴렀다. 버스 손잡이에 몸을 지탱하고 금세 울고 싶어지는 마음을 눌렀다. 그래, 오늘은 꼭 죽어야 겠다.     

당신은 매정한 방식으로 나를 떠났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식사처럼 잦은 당신의 이별통보에 매번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이번엔 진짜 일까봐. 이번엔 정말 나를 떠나려는 걸까봐.     


그렇게 당신에게 목을 매달고 절절거리며 사는 동안 나는 30대를 훌쩍 넘겼고, 버스 차창에 비친 나는 조금도 매력적이지 않다.     


당신에게 도시락을 싸다주던 시간이 떠올랐다. 출근 준비시간보다 2시간 반 이상 일찍 일어나 아침, 점심 도시락 두 개를 준비하고, 회사보다 16정거장 이상 가야하는 당신의 직장으로 매일 날랐다. 퇴근 후에는 다시 당신에게로 가 설거지도 돼있지 않은 도시락통을 받아 들고 장을 보러 갔다. 찬 거리를 사다가 집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고 재료 손질을 했다.      


당신에게 가는 정류장 노선을 외우고,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다음으로 방송되면 급하게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하차벨을 누르고 도시락을 두 손에 가득 쥔 채 정류장 앞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 떨렸다고 하면 당신은 웃을까?     


흰 가운을 입고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도, 바로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내게 빨래 든 쇼핑백을 내미는 당신을 보고도, 나는 마냥 기뻤다고 하면 당신은 웃을까?     


그렇게 사랑했던 시간이 12년이었다. 당신은 8살 어린 대학 후배에게 설렌다고 했다. 여느날처럼 도시락을 내미는 손과, 받아드는 손이 겹쳐지는 순간.     


나는 그 목소리가 내게 “내일은 잡채 좀 해와”하던 투와 다를 게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면 되나. 그래왔듯 당신의 도시락을 매일 준비하고, 당신의 빨래를 받아들면 되는가.     


당신은 다른 여자에게 설레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우리 그렇게 지내면 되는가.     


해답을 주지 않은 당신이라서, 나는 다음날에도 당신에게 도시락을 싸들고 갔다. 당신은 나를 벌레 보듯 봤다.     

그때부터 나는 당신에게 더욱 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됐다. 그리고 기어이 당신은 내게 후배의 사진을 보여주고, “얘랑 잤어”라는 말을 했다.     


예뻤다. 미래가 촉망했고, 나이가 어렸다.     


그 순간부터 죽고 싶어졌던 것 같다. 내 인생이 참 보잘 것 없이 느껴지는 바람에.


난 그저 당신이 전부인 삶을 마땅하게 살았는데.


도시락 배달을 끝냈고,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했다. 당신은 내 생각을 하기나 할까? 내가 해주는 잡채 생각이 더 잦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료들 보기 낯 간지럽다고 단 한번도 올리지 않았던 메신저 프로필에, 커플사진이 올라왔다.     


간절히 죽고 싶어졌던 밤이었다. 그 때부터 마땅한 죽음을 물색하며 지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밤이라고 생각했다.     


집 현관에 들어서는데 익숙한 신발 한 켤레가 놓여있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도어락 소리에 현관으로 걸어나왔다.     


“일찍 왔네, 우리 딸.”     


청국장 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였다. 불쑥 찾아온 엄마는 내게 든든하게 밥을 해먹였다. 내 등을 말없이 토닥이기도 했다. 어쩌면 드리운 이별의 기운을 느꼈는지 몰랐다. 당신의 프로필 사진을 보신 건지도.    

 

자고 가겠다는 엄마 때문에 오늘도 죽지 못하게 됐다. 나의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하게 할 수는 없어서.     


그 생각이 문득 들자 눈물이 났다.    

 

엄마,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나를 사랑하는 가장 크고 넓은 사람에게, 내 찰나같은 사랑이 버림받았다고 끝나지 않을 지옥 같은 상처를 줄 뻔 했다.     


나를 잠시 머물던 사랑에, 이내 나를 쉽게 떠나버린 사랑에, 내 목숨이 종잇장 같아져버렸다.     


엉엉 우는 나를 그저 안아주는 엄마 어깨에 얼굴을 묻고, 이유를 묻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는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내가 했던 생각을 끝내 비밀로 묻어두기로 한다. 죄스러운 마음은 살아감으로써 조금이나마 갚아내기로 한다.     

아직 나는 죽기에 너무 뜨거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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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메일 내용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살아줘서 감사한 당신들에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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