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이라니
하루가 짧아졌다. 주로 멍하게 보내므로. 나의 일과는 주로 너는 이 시간 쯤 무얼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을 지표로 움직인다.
너와 보낸 짧은 시간을 온종일 생각한다. 잠시였던 시간, 너는 많이 웃었고 때때로 가면을 벗은 맨얼굴을 내보여줬다. 나를 기다리는 뒷모습에, 너의 이름을 부르자 이내 다가오는 네가 하염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처음 눈을 맞추고, 더 이상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고. 많은 사람들 틈에서 너를 기억해내는 일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고. 나는 오래오래 생각한다.
김인육 시인이 시 ‘사랑의 물리학’을 통해 묘사한 강렬한 감정이 내게 왔었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내 마음이 사과처럼, 유난히 단단한 사과처럼 몇 번이고 큰 소리를 내며 발끝까지 떨어졌다.
너의 청순한 눈매가, 단정한 피부결과, 볼에 남은 붉은 생채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너의 손목에서 나던 냄새가, 이내 나의 손목을 가져다 맡던 코끝의 온도가 가슴에 뭉클하게 내려앉았다.
아주 짧은 순간, 너의 인생을 이해한다. 마음이 간지러웠다.
너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 밤은 길었다. 나는 잠결에도 깨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다. 너와의 대화를 다시 읽고 눈을 감았다. 기어이 오지 않은 연락이 사무치게 서글퍼서 금세 잠들지 못했다.
가느다란 꿈 속에서는 너를 봤다. 내 손목을 잡고, 내가 원하던 말을 해주었다. 벅찬 마음으로 깨어난 현실이 냉담할수록 몸은 무거웠다. 잠은 오다가도 가장 멀리로 가버리곤 했다.
신파지만, 너에게는 내가 그저 수많은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낯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절절한 노랫말들이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몇 번이고 묻고 싶었다. ‘그 때 나한테 왜 그랬어?’ ‘왜 나를 그렇게 흔들었어?’ 따져 묻고라도 싶었다. 왜 내 손을 잡았는지, 꽤 오래도록 왜 놓지 않았는지. 왜 계단을 먼저 오르게 하고 너는 뒤에서 따라 올랐는지, 내 뒷모습을 보고 귀엽다고 말했는지. 나의 연락처를 묻고, 왜 먼저 연락했는지. 왜 내가 늦은 밤에 귀가하면 걱정했는지, 왜 내가 대화를 끊으려 해도 계속 이어 갔었는지..
그러나 읽히지 않은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은 수 십 번이 계속돼도 마음 아픈 일이었다.
짝사랑. 입에 담기도 간지러운 말. 내가 그것을 하고 있는가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하루종일, 네 생각만 날 수가 없다. 밥이 먹히지 않고 마음이 내내 뭉클할 수가 없다. 너에게 연락할 구실을 만들고, 함께 나눈 몇 안 되는 대화를 계속 읽고, 너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을 수 없다.
일을 하다가도, 네 생각이 난다. 네 볼에서 나던 향이 맴돈다.
나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고, 너는 여전히 답이 없다. 답이 없는 목소리를 기다린다. 너의 표정을 보고싶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새 너를 좋아하게 돼서, 너는 그 사실이 당황스러울까? 묻지는 못하고 내내 마음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