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헤어진걸까?
내 20대를 모두 채운 연애가 막을 내렸다. 헤어지자는 말로 관계를 정리한 것은 며칠 안 된 일이나, 우리의 관계는 이미 오래 전 끝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봤다. 3주년 기념일을 잊었던 너로부터인가. 어느새 권태로워진 우리 관계로부터. 너무 심한 말로 서로를 다그치고, 뜨겁게 다투던 때. 그리고 어느덧 조금도 싸우지 않아진 때로부터?
이성 간 연락 문제로 우리는 참 질리게 다퉜다. 이성친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 그런 나를 답답해하는 너로 인해.
- 네가 다른 여자랑 매일 매일 끊어지지 않게 톡을 주고 받는 것, 함께 있을 때 그 애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옮기는 게 나는 정말 정말 정말 싫어
- 네가 싫다고하면, 내가 안 해야 돼?
늘 같은 레퍼토리였다.
이 문제로 고민을 털어놓는 너의 톡을 본 적 있다. 네가 “내 여자친구도 너처럼 쿨하면 좋았을텐데”라고 푸념하자 맞장구치며 저 역시 나를 이해할 수 없다던 너의 여사친.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친구관계도 이해 못 하는, 쿨하지 못하고 집착이 심한 여자친구였다.
그 애와 단 둘이 술을 마시겠다던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했을까? 그 애의 연애상담을 핑계로 늦은 밤 2시간 넘게 전화통을 붙들고 있던 너에게, 무슨 말을 해줬어야 네가 원한다는 쿨한 여자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로 우리가 끝내 다퉜을 때 나에 대한 해명보다도 “왜 남의 핸드폰을 함부로 봐?”라며 화가 우선이던 너의 태도가 참 불편했다. 마음이 따끔따끔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과하게 됐다. 너의 일상을 들여다봐서, 참 미안하다고.
누가 봐도 네가 이기적인 것 같은데. 너에게 요구하는 게 부당한 것 같진 않은데. 이 문제로 힘들어져서 친한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았을 때. 가장 명쾌하고도 담백한 해결법을 들었다. 그만하고 헤어져. 맞다. 관계를 그만둬야 끝날 일.
그 즈음 나는 너의 험담을 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인정하게 됐다. 내 속이 좁아서 너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기억나니. 그러자 우리는 더 이상 전처럼 싸우지 않았잖아. 너는 고맙다고 했고 나는 조금도 토를 달지 않고 웃었어.
대체 뭐가 고마웠을까? 내가 너를 기다렸던 숱한 시간들보다, 너에게 베푼 사랑의 크기보다, 참 값싸고 볼품없는 일인데.
네가 입대하던 날 훈련소 앞에서 먹었던 김치찌개 냄새가 아직도 생생해. 우리 둘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그저 울지 않으려고 씹지도 않고 밥을 삼켜댔잖아.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너희 부모님의 위로를 받으면서 참 많이 울었었다.
웃기지. 네가 입대한 뒤에 나는 학교 수업도 안 가고 침대에만 누워서 무기력하게 며칠을 보냈는데 낯선 지역번호에서 걸려온 네 전화에 아무 말도 못하고 소리 내어 울기만 했잖아. 우리 둘.
마지막 휴가까지도 울면서 복귀시키고 마침내 네가 제대하던 날. 잠도 한 숨 못 자고도, 넘치는 행복감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네가 군대에 있는 동안 나의 세계는 너에게 맞춰져 있었다. 몇 시에 전화가 올 지 기다리느라 하루가 길었다. 너의 휴가만을 손 꼽으며 살았다. 주말은 너를 위한 시간이었다.
네가 제대하고 나면 그 기다림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들과 만나느라 나를 잊는, 내 부재중전화에 회신하지 않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톡은 확인하지 않고 페이스북만 보고 있는 너를. 나는 여전히 기다려야 했다. 기약도 없이 오래도록.
제대한 너는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은 복학생이 되었다. 나는 모르는 동생들을 사귀고, 성별 짝을 맞춰 모임을 갖는다. 불평을 하는 내게 말한다. “너도 놀아”
나는 군대에 있는 네가 신경쓸까봐, 미안한 마음에 놀 수 없었다. 빛나는 새내기를 내성적으로 보냈다. “나는 군대에 있는데, 너는 친구들이랑 놀아서 좋겠다” 가시 돋힌 말 한 마디에 죄라도 지은 듯 쩔쩔맸다.
휴가 때면 내 핸드폰을 검열하곤 했지? 카톡이며 SNS 프로필 사진은 모두 너로 해둬야 했고, 남사친 번호를 차단해뒀다. 나를 그렇게 고독하게 만들어 놓고서, 이제와 모르는 척 발을 빼는 모습에 마음이 상처받았다가 토라졌다가 이내 식어갔다.
졸업하면 달라지겠지, 취업하면 달라지겠지. 어느 순간 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내가 될 수 있겠지. 그렇게 질질 끌어왔던 연애였다.
그렇게 9년을 만났고, 너의 중심은 여전히 내가 아니다. 용기가 나질 않아서 미뤄왔던 이별을 드디어 고했다. 헤어지자는 말에 왜냐고 되묻는 너에게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성친구 문제로 헤어지는 걸까?
아니었다. 나는 나를 방치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다. 나보다 중요한 것이 많은 사람과, 나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이성친구 문제는 그 중 하나였다.
이성친구, 썸 그 사이를 아슬하게 줄타며 네가 여사친과 즐기는 동안 나는 수없이도 잊혀졌다. 그 서러움이 쌓여 우리 관계가 끝나간 것이다.
우습게도,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냐고 윽박지르는 너를 보며 안도했다. 기다렸다는 듯 나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아줘서 감사했다. 불안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러는 나를 보며, 나 오래 전에 너를 정리했구나.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