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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Nov 14. 2019

가장 허무한 존재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어지는 것.

연애가 시작되면 그 쪽만을 보고 사는 사람.


나는 줄곧 나를 그렇게 정의했다. 주변 사람들의 입으로 직접 전달해 듣기도 했으니 어느정도는 객관화 된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사람은 싫었다.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은 질투나 시기 같은 묘한 감정을 동반했다. 나는 소위 ‘츤데레’라 불리는 사람. 나에게만 종종 다정한 사람에게 나의 전부를 주고 싶어졌다.


그 츤데레들의 사랑 방식에 익숙해 지다보면, 문득 나는 기념일에 받는 꽃 한 송이에 눈물을 왈칵 쏟아내게 되었다. 잠이 들기 전 짧은 통화가 끝날 때 ‘사랑해’라는 나의 말에 ‘응.’ 또는 ‘알아’라고 대답하던 남자친구가 ‘나도’라고 해주는 어느 날이면 나는 오랜 시간 뒤척거리느라 잠에 들지 못하고, 이불이 부시럭 거리는 소리만 밤새 천둥처럼 지나가곤 했다.


왜인지 그들은 나를 모두 떠났다.


“결혼을 한다면 너 같은 여자랑 해야겠다 싶어.”

뜬 구름이라도 잡는 듯 황홀하고도 막연한 말로, 내 마음을 내내 부풀게 하던 사람.


술에 취한 밤이면 가다듬지 않은 목소리와 어눌한 발음으로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하나보다”라며, 나를 울고 싶게 하던 사람.


영원인 줄 믿었던 이들이 어느 순간 단칼에 관계를 종료해 버리고 돌아섰을 때마다 나는 주저 앉았다. 연애는, 이별은 할 때마다 새로워서 도무지 학습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늘 계산하는 법을 모른 채 과하게 뜨거워졌다. 상대방이 달아오를 시간을 주지 않고, 나 먼저 펄펄 끓어버리곤 한 것이다.


나는 양은냄비처럼 쉽게 끓어올랐고, 그 온도가 가마솥처럼 오래도록 지속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목구멍이 간지러워서, 더는 사랑한다는 말을 참지 못하고 먼저 말해버린 밤. 내가 사랑했지만 나를 떠난 그들 중 누구도 나와 같은 타이밍에 “나도 사랑한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외롭고 고독한 짝사랑은 연애 중에도 이어졌다.


나만 그의 하루가 궁금하고, 그의 식사가 궁금하고, 그의 감정이 궁금한 날들.

그는 내가 오래도록 연락이 없는 밤. 지독한 감기기운으로 힘들어 하던 일에 관심이 없었다.

다음 날 정신이 들어서 감기 때문에 지난 밤 힘들었노라고 투정하자, 프랜차이즈 죽 기프티콘을 하나 보내주었을 뿐.


나는 그 일에 감동을 받아, sns 업데이트를 했다. 우습지만 이 사람에게 이만큼 걱정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자친구가 너무 다정한 것 아니냐는 댓글을 보면 마음이 들떴다. 부럽다는, 누구랑 비교된다는 식의 댓글을 보면 비로소 내가 사랑 받고 있음을 알았다.

지난 밤 사무치게 외로웠던 축축하고, 뜨거운 밤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꼭 나를 잘라내고 나서는 곧바로 또 다른 사랑에 빠져버렸다. 나는 그것이 어느정도 환승이별임을 알고 있었다.


내 계정을 차단한 그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그가 태그한 새로운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훑다보면ㅡ아니 사실은 몇 번이고 필사라도 할 듯 복기하다 보면ㅡ 내가 아팠던 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었구나. 그 밤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에게 연락처를 물었었구나.


사랑한다는 말에 ‘나도’라고 대답했던 날, 그녀와 따로 만났었구나. 퍼즐이 맞춰지곤 했다.


그러고 나면 오래 앓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고열을 겪었다.


아직 대학생일 때는 학교를, 직장인이 되고나서는 직장을 정말 간신히 나갔다. 정신은 집에 둔 채로 몸만 다녀오는 식이었다. 너무 아파서 꼼짝도 하지 못할 때는 집에만 있었다.


실연을, 환승이별을 정통으로 맞고난 나는 병원에서 감기약을 처방해 줄만큼 실제로 아팠다.


내과에 방문했을 때는 항생제를 줬지만, 정신과에 방문했다면 항우울제를 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라고 병명만 붙이면 다 납득이 될만큼 아팠으므로.


밥도 넘기지 못해서 수액을 맞으러 다녔다. 빙글빙글 병원 천장이 도는 동안 자꾸만 눈물이 났다. 수액양을 조절해주러 온 간호사는 많이 아프냐며 이마를 짚어줬다. 이마엔 식은땀이, 눈에는 눈물이 가득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의 손이 너무 찰나여서, 손이 떠나는 순간 나는 외로워졌다.


누군가에게 걱정 받는다는 게 이런거구나. 이렇게 벅차고, 목울대가 뜨겁고, 대답도 하지 못할 만큼 감정이 북받치는 일이구나. 나는 이마를 다녀간 온기를 그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나를 걱정한답시고 모바일로 죽을 결제해준 구 남친은 나를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징징거리는 목소리가 듣고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아프다고 문자한 내게, 그럼 일찍 자라고 답하던 구구 남친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작은 정성에도 쉽게 마음이 무너지는가. 나는 내가 나를 그렇게 되도록 두었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작은 사랑만을 받고, 그 곳만을 목 빠지게 보고 있으면 저절로 이렇게 되는 것이다.


담담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별을 겪을 때마다, 우산도 없이 그 차갑고 날카로운 폭우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을 때마다. 다음 사랑에는 담대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다짐은 꼭 가장 뜨거울 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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