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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안키친 May 09. 2023

우울할 때 김밥을 쌉니다

 소울푸드에게 받는 위로


어릴 적 우리 엄마는 김밥을 잘 싸주지 않았다. 가끔 특별한 날 외식으로 뷔페에 가면 은색 대형접시에 하나 가득 쌓여있는 알록달록하고 동그란 김밥에 홀려 잔뜩 먹고왔던 기억이 난다.명색이 뷔페인데 배만 부르고 귀하지도 않은 김밥이 뭐가 그리 좋았던지. 집에서 자주 먹을 수 없기에 더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요즘같이 분식집에서도 김밥을 많이 팔지 않았던 걸로 보아 그 당시는(80년대) 김밥이 귀한 음식이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어쨌든 나에게 김밥은 뷔페에서 꼭 가져다 먹어야 할 필수메뉴였다.


결혼을 하고 살림과 육아를 해보니, 그 옛날 우리 엄마가 왜 김밥을 자주 못쌌는지 이해가 간다. 김밥은 먹을 때 간편하지만 만들 때 드는 품은 결코 적지 않은 음식이다. 요즘은 아마도 김밥을 쌀 수 있지만 노동력이 아까워 사먹는 부류 또는 싸고 싶어도 잘 못싸서 사먹는 부류로 나뉠 것이다.


그렇게 김밥은 나의 유년시절을 수놓은 ‘소울 푸드(soul food)’ 이기에 나는 김밥을 자주 사먹기도, 자주 싸먹기도 한다. 최근 몇년 새 급격히 오른 외식 물가 때문에  ’김밥 한줄‘조차 마음 편히 사먹기 힘든 게 슬픈 현실이지만…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김밥은 재료가 훤히 보여서 맛을 예측할 수 있는

‘정직한 푸드’로 칭송받지 않았던가. 역시 나의 소울푸드 김밥의 클래쓰가 이 정도다.


우리 엄마의 소울 푸드는 ‘바나나’다. 내가 어릴 적 바나나는 무척 귀한 과일이어서 가끔 조금씩 밖에 못먹었다. 그런데 나만 먹고싶어했던 건 아닌가보다. 가끔 아이들에게 바나나를 사주고 본인은 거의 못먹던 엄마도 먹고 싶었던 거다. 요즘은 바나나가 저렴해지고 구하기 쉬워진 덕에 바나나는 우리 엄마의 소울 푸드가 됐다.


이렇게 과거의 욕망과 불만을 해소하고자 생겨나는 소울 푸드도 있는 것 같다.




집에서 김밥을 쌀 때면 무의식적으로 어린 나의 욕망을 내손으로 채워주려는 듯한 기분에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내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나도 먹으면서 어린 나를 다독이는 셈이다.


어버이 날, 양가 부모님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선물을 드렸다. 한 부모의 자식이자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된 지금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신경이 쓰인다.


천방지축 초등생 두 아들에게 효도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평소에 좋았던 날처럼(말 잘 듣고 순탄한 날)만 평범하게 지났으면 했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무슨 날만 되면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말썽을 피워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건 왜인지…


이번 어버이날도 나는 심히 외롭고 괴로운 마음으로 보내야만 했다. 저녁 메뉴도 조금 고민하다 관두고 나의 소울 푸드 김밥으로 정했다.


김밥을 꼭꼭 씹으며 다짐한다. 힘든 육아에 큰 기대도 실망도 할 것 없다.내가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에 기대어 쿨하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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