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집밥에 서사를 담다
오늘 저녁은 어쩐지 된장찌개를 끓이고 싶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고민을 해야만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혹자는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행위를 통해 생각을 정리한다고 하지만(매우 부러운 취향 중 하나), 난 요리를 하며 생각에 잠기는 타입인 것 같다.
냉장고 안의 재료를 모두 헤쳐모아 하나씩 손질을 시작한다. 감자, 양파, 애호박, 버섯, 두부까지 5형제 모두 집합이다.
손질은 가장 오래걸리는 1조 감자와 양파부터.
감자 필러를 꺼내 껍질을 깐다. 감자는 흙이 조금 묻어나더라도 씻지 않고까는게 좋다. 필러가 표면을 스윽- 하고 스칠때마다 감자는 노란 속살을 드러낸다. 이내 감자 껍데기가 씽크대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까만 자국을 만들고 마음은 서서히 불편해진다. 제일 귀찮은 게 감자껍데기를 치우는 일. 몇년 전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를 설치하자는 남편의 제안에 동의한 것도 감자껍데기 같은 작고 치우기 어려운 쓰레기들이 나와서였다.
감자는 전체를 원형으로 8등분하고 한입크기로 4등분하며 일정한 크기로 서걱서걱 썬다. 전분이 묻어나기에 묵직하고 규칙적인 칼소리에 복잡한 생각들도 8등분, 4등분 으로 잘게 쪼개기 시작한다.
다음은 양파.자색 양파라 갈색 국물과 색깔은 안맞지만 맛은 더 좋다. 양파는 아이들이 거의 안먹어서 가끔 큰맘먹고 사는 식재료다. 얼마전 바베큐용으로 4-5개 들이 한 망을 샀는데 아직 세 개나 남아 서둘러 먹어야 한다.양파는 반개를 준비했다. 사각사각 양파를 썰 때 코끝에 풍기는 알싸한 매운향에 식욕이 솟는다. 나의 경우만 그런지 몰라도 양파나 파를 썰 때 나는 향은 묘하게 식욕을 자극해 음식을 먹기 전 위장을 정화시키는 것 같다. 음식을 먹을 때 맛과 함께 식감이 중요하듯 야채를 썰 때도 써는 감이 조금씩 다르다. 사각사각 칼날에 굴하지 않는 양파의 결을 스치며 숭덩숭덩 균등한 크기로 자른다. 코끝을 스치는 분명한 존재감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 진다. 복잡하게 엉킨 문제들이 풀려나가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다음은 2조 애호박과 송이버섯, 그리고 두부.
애호박은 감자와 마찬가지로 원형으로 썰고,4등분으로 썰어 한입 크기를 만든다. 송이버섯도 한입크기로 적당히 자른다. 두부도 한입 크기로 잘라준다.
슥슥슥슥-
삭삭삭삭-
딱딱딱-
재료 손질 하는 소리에 맞춰 복잡한 상념들이
단순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이제 물을 끓여 된장을 풀어준다. 단단한 재료인 감자부터 투하, 양파와 애호박,버섯,두부의 순으로 투하한다. 모자란 간은 멸치앳적 두스푼, 설탕 반스푼으로 마무리했다.
된장찌개가 마저 끓는 동안 지저분해진 주방을 청소한다. 널브러진 감자와 양파 껍질, 야채 꼭지 등을 모아 버린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불필요한 잡념들도 함께 버린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바라보며 속으로 3-2-1을 세고가스불을 껐다. 한결 정돈된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이유, 자주는 아니라도 집밥을 즐겨하는 이유를 이제 알것 같다. 혼자만의 몰입감, 그걸 통해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요리에 나만의 서사를 담을 수 있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