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안키친 Nov 26. 2021

바닐라맛 우유를 든 소년

소소한 안녕

지난 여름 당x마켓 중고거래를 하면서 있었던 일화이다.


휴가중 내내 미뤄왔던 아이들 장난감 처분에 나섰다.

한때 베이xx이드 시리즈에 빠진 아이들 성화에 주말마다 쇼핑몰이며 마트에 갈 때마다 사줬던 팽이인데 쌓이고 더이상 가지고 놀지 않으니 집안 한구석을 차지하는 짐덩어리가 돼 있었다.

비싸게 사서 거실 바닥에 수많은 스크래치만을 남긴 나에겐 참으로 야속한 장난감들.

산값을 생각하면 비싸게 팔아야 하지만 중고거래로 빨리 치워버리자 싶어 저렴하게 일괄 판매로 당x마켓에 올렸다.


올린지 10분도 안되 채팅이 걸려와 다음날 거래를 하기로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집을 떠나는 물건들에 대한 시원섭섭한 마음에 비교적 깨끗한 포장을 준비해 현관 앞에

내놓았다.


다음 날 오후 1시에 오기로 했던 이웃에게 30분 늦는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집에 있는 일정이라 쿨하게 괜찮다 말하고 기다린다. 그런데 또 연락이 와서 오는 버스를 잘못 탔다며 30분쯤 더 늦는다 미안하다 해서 알겠다 하고 또다시 기다림..


‘직거래면 보통 차로 와야 편한 곳인데 버스로 오나? 하긴 무거운 건 아니니 뭐..’


가끔 약속을 해놓고 구매의사를 철회하는 경우도 있다보니, 약속시간을 바꾸는일 쯤은 일정상 문제가 없고 오기만 하면 다행이라 여기는 편이다.


드디어 집앞에 왔다는 채팅을 받고 부랴부랴 나가봤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와중 무더운 찜통더위는 여전하다.


단지 앞 편의점 즈음 채팅으로 나왔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웬 고등학생 남학생 한명이 편의점을 나와 한손에 바닐라맛 우유 3개를 끼워 들었다.

무심코

‘아, 손이 크니 저런 걸 한손에 세개나 드는군ㅎㅎ’

생각하며 이웃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버스로 온 이웃이라면 분명 우두커니 서있는 (아마도) 젊은 엄마가 있어야 할 것인데, 왜 없지?


그 때 뒤에서 누군가 쭈볏거리며 말을 건다

 “저,, 저기..”

‘아, 좀전에 그 고등학생? 고등학생이 베이xx이드 시리즈를??’

“아 네~~당x마켓으로 오신거에요?”

“네, 제가 늦어서 이거 ..(바닐라맛우유 3개)받으세요;;;”

“(당황+민망+들 손이 없음)아니 이런건 안사오셔도 되는데;;;”


한손에 팽이가 잔뜩 든 쇼핑백을 든 나는 두 손으로도 바닐라맛 우유 3개를 들수는 없었다. 순간 1-2초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학생이 우유를 주다가 바닥에 떨어뜨려 우유 한개가 찌그러지고 말았다. 본인도 주기에 민망해 하는 거 같아 나도 그냥 하나는 직접 먹으라며 두 개만 건네 받았다.

난 의외의 인물을 만난 호기심에 혹시 엄마가 대신 보냈나 싶어 물었다.

“채팅도 직접 하신거에요?”

“네, 동생이 좋아해서 사러 온거에요.”

“아…좋은 형이네요^^”


학생은 미리 챙겨온 빈 배낭에 팽이 꾸러미를 가득 담고 쇼핑백을 돌려줘 우유는 쇼핑백에 넣어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꾸깃한 현금을 꺼내 전해주는데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다 들었다.


삼복더위에 동생 주겠다고 팽이사러 다른 동네까지 오다니,혹시나 힘들게 알바해서 번 귀중한 용돈으로 사주는 건 아닐지, 우유보다도 늦었다고 미안해하고 보답하겠다 생각한 마음이 더 기특했다. 중고거래를 하는 1-2분의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당x거래를 많이 해봤지만,돈을 다 받는게 아닌데 좀 깎아줄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긴 처음이다.


두 아들과 매일 전쟁같은 일상을 치르고 있는 엄마입장에서 단편적이지만 이런 스윗한 상황을 마주치면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현재로선 가능성 제로이지만, 우리집도 큰놈이 작은놈을 이렇게 챙겨주는 날이 미래에 올까?


집에 돌아와 혼자서 괜히 센치해져서 이런저런 상상을 더 해봤다. 궁금하지만 사연은 더 알수 없는 법, 더 알고 싶을 때 멈추는 것도 중고거래의 묘한 매력인 것 같다.


그 학생의 동생이 형이 준비한 팽이 플렉스를 보며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며 따뜻한 후기를 보냈다.

그리고 그 학생의 앞날도 흥하길 바라며…

작가의 이전글 김장의 헤게모니는 계속될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