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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빙자한 우리들의 이야기

파리대왕

by 초대받은손님

상황을 묘사할 때 쓰이는 표현들이 글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군대에서 읽고 있어서 그런 건가?

번역의 문제인 건가.

다소 부자연스럽다고 느꼈고 그럴 때마다 책을 덮고 싶었다.


소년소설 난 더 이상 소년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여기 나온 이들이 느끼는 마력이라 표현된 것

혹은 그들의 환호와 탄성이 나오는 부분들에서 정서적 공감을 느끼려고 했지만 될 수 없었다.


흉터자국이라 표현된 것도 혼란만 더해질 뿐 아쉽고 상황이 그려지지 않는다.

자꾸 나오는 분홍색 돌도 상상되지 않아서 힘들다.


책의 초반에 투덜거리며 기록한 내용이다.

완독 후 서칭을 해보니 내가 읽은 출판사의 번역에 말이 많았다.

뭔가 다행이었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책에 감동받지 못한

나에 관한 괜찮은 변명거리가 생긴 것이.



Check point



노는 것이 재미있고 삶이 더없이 충족하여 희망을 품을 필요도 없고 따라서 희망 자체도 잊히고 마는 때처럼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는지

내게도 이런 시절이 올지


삶이 더없이 충족하여 희망을 품을 필요가 없다.

언제부턴가 내게 생긴 오랫동안 충족되지 못한 희망.

여자친구.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위 글의 삶처럼 살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이 이 책의 후반부에 있다며 다소 아쉬울 것이다.

내겐 늘 희망사항이 있었다.

그래서 위의 저 글뿐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이 매혹적이다.




이러한 신비로운 현상에도 익숙해져 버리고 이내 무시하고 말았다.



내가 익숙함을 인지했을 때

그때가 이미 늦어버린 때라면 정말 슬플 것 같다.


어제 유튜브의 한 댓글을 읽다가

엄마가 내 이름을 살갑게 부르며 환한 미소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떠올랐다.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

언젠가 내게 슬픔을 줄 것 같아서

두렵다.



사이먼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질을 표현해 보려고 애썼으나 말이 잘 되지 않았다.


사이먼이 말하려는 인류의 고질은

상상력인 듯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인류의

추잡한 상상력


나 역시 예전부터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기막히게 상상하는 취미가 있기에

꽤나 수고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그 수고 뒤에 깨달은 것은

이런 피곤한 상상을 멈추기 위해서는

당장 상상하는 그것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춤을 춰! 자 시작! 춤을 춰!


폭풍우가 올 것만 같은 하늘아래에서

오두막을 짓는 이성적인 행동이 아닌

춤을 추는 낭만적인 이 행위가

인상 깊었다.


폭풍우에 대한 두려움을 광기로 덮어버리는

잭의 리더십이 대단했다.


이 부분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봉화를 외치는 랠프도

폭풍우 앞에서 잭을 따라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에게도 공동의 두려움이 생기면

하나고 될 수 있을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 간 북한 병사들,,

전역을 일주일 앞둔 말년병장은 초조할 뿐이다.)




태고적 이 세상의 첫날 아침에 그렇듯이 새들이 나무 꼭대기이서 울며 날아올랐다.


이런 상상하기 힘든 문장이 좋다.


우주 그 너머라던지


죽음 그 이후라던지



구제된 순간의 묘사는 천진성의 상실을 시사하면서

이 작품이 순수에서 경험에 이르는 일종의

통과제의의 작품임을 보여준다.


순수에서 경험에 이르려고 하는 인류 덕에


나 역시 희망을 품게 되었고


우린 결코 안락을 느끼기 어렵게 되었으며


곧이어 상실감에도 익숙해져


자멸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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