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가는 길 Mar 13. 2020

은혜 갚은 고양이

-그 녀석의 결초보은-

하.. 이 녀석을 어떻게 하지??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동물병원에 동물을 유기하면 착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길에서 아파 보이는데 더러운 고양이를 발견하면 얼른 주워서 박스에 넣은 다음 동물병원 앞에 두고는 기분 좋게 떠난다. 본인은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조금도 쓰지 않았지만, 소중한 생명을 살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차가운 도시남이라는 허세 가득한 글을 sns에 올릴지도 모른다. 결국 그 뒤치다꺼리는 동물병원에서 다한다. 키우고, 살리고, 분양하고... 이곳은 구청도 경찰서도 아닌 병원이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걸까??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애를 발견하고는 근처 동네 병원에 데려다주면 미친놈이란 소릴 듣지 않을까??

   


 한참 동안 그런 일이 없더니, 오래간만에 출근길 병원 문 앞에 수상쩍은 박스가 하나 있었다. 이곳은 평화로운 시골의 작은 마을. IS 무장 단체에서 우리 병원 앞에 폭탄을 던져놓을 이유도 전혀 없고, 웬 정신 나간 갑부가 갑자기 동물복지를 위해 5만 원짜리로 가득 찬 박스를 우리 병원 앞에 두고 갔을 리도 전혀 없다. 박스를 열어보니 역시나 말라비틀어진 검은색 고양이 한 마리가 힘없이 누워있었다. 3개월령쯤 되었을까??  애휴.. 일단 한숨부터 쉰 후, 안으로 옮겼다. 다행히 큰 병이 있는 건 아닌지, 수액을 좀 맞고, 맛있는 고양이 캔을 허겁지겁 먹은애는 곧 상태가 좋아졌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다.      

 사실 유기견이나 유기묘가 들어왔을 때 살리거나 치료를 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살아난 후에, 이들이 또 10년이 넘는 생을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동물병원에서 그냥 키우면 되지 않느냐 라고 쉽게 이야기한다. 사실 동물병원이 일반 가정집보다는 동물 한 마리를 키우는 게 좀 더 쉽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마리의 동물이 병원에 추가가 되면, 한 사람의 일이 두배로 많아진다. 밥도 챙겨줘야 하고, 청소해줘야 하고, 강아지라면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그리고 저절로 늘어나는 냄새와 소음도 상당한 스트레스이다. 짧은 시간 동안의 입원이나 호텔은 비용을 받고 하기도 하거니와 끝이 있으니 감내하고 할 수 있지만, 실제 병원에 무책임하게 유기되어 남겨진 동물들은 그런 것도 아니고, 결국은 테크니션들이 지쳐서 그만두게 된다. 우리만 힘든 것이 아니다.  그 동물 역시 생명은 보존할 순 있지만, 좁은 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동물병원이라도 개나 고양이를 함부로 돌아다니게 놔둘 순 없다. 오히려 사나운 큰 개나 예민한 고양이들이 계속 오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 장에서 사는 것이 스트레스인 종에게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이름은 빼빼로로 당첨. 그 녀석을 보관하고 있던 박스가 빼빼로 박스였다. 여자 아이였고, 치료는 하루 수액으로 끝이 났다. 밥에 회충약을 섞어놔도, 항생제를 섞어놔도, 그냥 입으로 넣고 보는 귀여운 아이였다. 손도 조금씩 타서 골골송에 그르렁을 달고 다니고, 그 작은 녀석이 고양이랍시고 감자와 맛동산도 모래에만 이쁘게 만들어 줬다. 그런데 빼로 이 녀석이 슬슬 적응이 되었는지, 이젠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몇 번 이쁘다고 손님 없을 때 꺼내, 홀에서 놀아줬더니 하루 종일 꺼내 달라고 울기 시작했고, 홀에서 키워볼까 하고 꺼내 줬더니 하루 만에 병원에 있던 사료들을 다 뜯어버려서 용품들을 전부 못쓰게 만들었다. 그날 원장님은 빼로가 입힌 손실을 메우겠다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열심히 수술하셨고, 풀어놓은 우리는 죄인이 되었다.  


 자기 때문에 우리가 골머리를 썩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 녀석은 일주일 만에 1kg이나 늘었다. 철장에서 울면서 발버둥 치다가 드디어 문 여는 법을 터득해버린 빼로는 자기 힘으로 탈출이 가능해졌고, 진료 중에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 개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젠 정말 안 되겠구나.. 원장님의 머리숱이 조금 더 줄어들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했다. 최대한 빨리 여기저기 무료 분양글을 올리되, 접종과 중성화는 무료로 해드려서 그 대신 최대한 좋은 가정에 분양을 보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되던 날 그 녀석은 기어코 철장을 탈출한 다음 에어컨 밑에 숨어있다가 홀에 문이 열린 그 순간 밖으로 도망가버렸다.      

 멍~~~~

 3초간의 침묵.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음속의 소닉같이 빼로는 검은색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잡으려는 노력은커녕 다들 입 한번 떼보기도 전에 그 녀석은 검은 털만 공중에 흩뿌려 놓은 채 없어졌다. 제일 허탈해했던 사람은 그 순간 무료 분양 글을 올리고 있던 박쌤이었다. 한참을 문만 멍하니 바라보던 박쌤은 조용히 델리트 키를 눌러 글을 지웠다.      


 잘 살겠지?? 

추억하기에는 조금 짧았던 일주일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애써 빼로가 잘살고 있을라고 자위했다. 하필 그날부터 이틀간 혹한에 눈까지 와서 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어디서 뭘 먹고나 다니는지.. 첨 왔을 때처럼 또 쓰러져서 죽어가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혹시 모르니 사진이라도 붙여둘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무슨 일이지? 급하게 데스크로 뛰어나가 보니 박쌤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고, 그 앞에는 웬 럭셔리하고 교양이 넘쳐 보이시는 노부부가 싱글벙글 웃으며 서계셨다. 그리곤 어머님의 품에는 빼로가 세상 얌전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돼서 안겨있었다. 박쌤과 내가 막 입을 떼려고 하는데, 원장님이 재빨리 우리의 옆구리를 푹 찌르고는 본인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어머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애기 고양이 분양받으셨나 봐요.. 아이고 이쁘네..”

 빼로가 세상 이뻐 죽겠다는 미소와 함께 어머님이 자랑하셨다. 

 “아니 글쎄 엊그제 집에 가는데 이 고양이가 졸졸 따라 들어오더라고요. 안 그래도 요새 고양이 키워보려고 알아보던 차였는데,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데리고 들어갔어요. 하는 짓도 어쩌면 이렇게 이쁘고 귀여운지. 일단 오늘 건강검진 좀 해주시고, 되면 접종도 좀 해주시고, 아 그리고 사료하고 용품도 하나도 없어서 좀 다 구입할 수 있을까요. 아 그리고 여기 중성화도 가능하죠?? 몇 달있다가 하면 될까요????”

 빼로, 아니 밍키가 몸무게를 재고 있는 사이 원장님이 나직이 우리에게 속삭였다. 

‘빼로가 은혜갚는기다. 아는 채 하지 마라. 이젠 손님 인기라..’     

 진료실에서도 밍키는 너무 얌전하게 간단한 전염병 검사와 접종을 했다. 진료실에서 원장님이 보호자분께 하신 말씀에 다들 뒤에서 배를 쥐고 웃었다. 

“아이고, 밍키 진짜 순하고, 얌전하네.. 꼭 여기 와본 고양이 같네???”

 역시 20년 짬밥의 원장직은 고스톱으로 딴 게 아니구나... 한창 비수기였던 그날의 매출을 빼로, 아니 밍키가 한방에 메워주었다. 이 녀석, 넌 계획이 있었구나. 


 자기 용품과 음식으로 가득 찬 봉지와 함께 어머님 품에서 행복하게 병원문을 나서던 밍키.  그때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밍키가 우리에게 살짝 윙크를 하고 사라진 것이다.      

“봤어요???”

“나도 봤어요..”

 다들 벌린 입을 또 한 번 다물지 못했다. 고양이는 요물이라더니, 저 녀석 진짜 은혜 갚으려고 온 거야??  너 정말 잘 살겠다. 니가 웬만한 인간보다는 낫다야..     

 그 뒤로 노부부는 열심히 접종하러, 중성화하러 자주 오셨다. 올 때마다 우리는 표정관리 안 되는 얼굴로 밍키와 보호자분들을 바라봤고, 밍키도 자기 엄마 아빠 몰래 우리에게 요상한 표정과 함께 윙크를 해주곤 했다. 그 우스꽝스러운 얼굴만 봐도 그 녀석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았다. 

쉿~~ 이건 우리들만의 비밀이야~~~ 저분들껜 들키면 안 돼!


* 본 에피소드는 10여 년 전 동물병원에서 있었던 일로서, 요즈음의 동물병원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데스티네이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