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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Apr 14. 2020

노인과 바다

시작과 끝의 인연

어서 오세요. 저희 병원 오신 적 있으신가요? 휴대폰 뒷번호가 어떻게 되시나요??     

새로 온 테크니션 최쌤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하지만 지켜보던 나와 박쌤은 화들짝 놀라 최쌤을 말렸다. 

”쌤 저분은 그렇게 맞이하면 안돼요.. “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최쌤을 옆으로 밀치며 얼른 손님에게 다가가 강아지를 받아 들었다. 할머님의 입에서 욕 폭탄이 나오기 전에......     


 별로 무겁지도 않은 문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열린다. 한걸음, 또 한걸음. 한 손엔 강아지를 안고 (안았다기보다는 가방에 대롱대롱 매달고), 한 손은 긴 지팡이를 잡고 힘겹게 의자로 와서 앉는다. 우리 병원 최고령 단골손님. 김순금 할머님이다. 

우리 병원 식구들은 모두 할머님을 좋아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연세는 80~90세 사이로 추정. 눈이 침침하셔서 잘 안보이시고, 귀도 잘 안 들리지만, 목청 하나는 대단하시다. 5년 전 길에서 불쌍하게 떨고 있는 새끼 강아지를 발견해서 키우기 시작하신 이후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무슨 일이 있어도 1주일에 한 번씩 우리 병원에 들리신다.      


 김순금 할머님의 첫인상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처음 내원하셔서 등록을 하려고 하는데, 너무 말귀를 못 알아들으셨고, 결국에는 본인이 역정을 내시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당황한 테크니션을 대신해 노련한 원장님이 대충 알아들으시고는 어떻게 넘어갔지만, 할머님은 화가 풀리지 않아 한참을 씩씩 거리셨다. 콩알만 한 믹스견의 이름은 바다. 접종을 하러 오셨는데, 4만 원이란 말을 듣고는 또 기겁을 하시고는 비싸다면서 화를 내셨다. 본인이 한 달에 쓰는 돈이 십만 원도 안되는데 개 접종이 4만 원이라는 둥, 밥 먹을 돈도 없다는 둥... 

 난처해하는 테크니션을 보기가 딱했는지 원장님이 서둘러 나오셔서 2만 원만 받고 돌려보냈다. 그때는 기분 나빠하며 돌아가신 할머님이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님은 다음 주 같은 날 또 병원에 오셨다. 센스 없이 휴대폰 뒷번호와 강아지 이름을 물어보던 테크니션에게 또 화를 내신 후,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티브이를 보시고, 커피를 드시고 뛰어다니는 바다를 흐뭇하게 바라보시고 있었다. 

 감히 강아지 함부로 풀어놓으면 안 된다는 말도 못 하고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던 테크니션이 용기를 내서 할머님께 여쭤보았다. 

”어르신 혹시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주사 맞히러 왔지. 건강해지는 주사.. “

”어? 접종은 다음 준데요?? 그날 되면 문자 보내드릴 건데... “

”나 휴대폰 없는디??? “

 그렇다. 할머님은 휴대폰도 없으셨다. 지난주 접종 때 2주 후에 오시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할머님은 그냥 내키는 날 또 오신 것이다. 오늘은 이르다고, 다음 주에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들은 둥 마는 둥 한참을 병원에서 바다 노는 걸 보다가 갑자기 쓱 사라지셨다. 

 그리고 다음 주 같은 날, 할머님은 접종을 하러 오셨고, 거의 3시간을 병원에 앉으셔서 오는 손님들에게 말 걸고, 오는 개들 만져보고, 바다랑 싸움도 붙여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시고는 돌아가셨다. 

 그렇게 2달간 접종이 있던 없던 매주 오셨던 바다와 할머님. 마지막 접종을 하고, 원장님께서 이젠 안 오셔도 된다는 말씀에, 이제 돈도 없는데 잘됐다고 처음으로 환히 웃던 할머님. 

 다들 할머님 때문에 좀 시달렸던 터라 접종이 끝나서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할머님과 바다는 그 뒤로도 매주 같은 날 병원에 왔다. 가끔 한주에 두 번오는날도 있었다. 왜 오셨냐고 질문해도 별다른 대답이 없으셨다. 잘못 물어봤다가는 욕을 들을 수도 있었기에 다들 그냥 쉬쉬하고 방관하는 분위기였다. 한참 놀다가 가운 입고 있는 나나 원장님을 발견하면 할머님은 우리 바다 건강한지 한 번만 봐달라고 하신다. 청진해드리고, 귀 한번 봐드리고 건강하다고 말씀드리면 나름 기분 좋게 웃으시곤 고맙다고 하셨다. 테크니션이 가끔 할 일 없어 보이면 발톱도 깎아달라고 하고 그렇게 동물병원에서 혼자 재미나게 시간을 보내셨다. 

  사상충 예방접종 같은 것도 권하면 곧잘 하셨다. 물론 원장님 지시하에 반값 정도만 받고 해 드렸고, 가끔 설사하거나 피부 뒤집어지면 치료도 할인을 해드리면 꼭꼭 받고 가셨고, 약도 잘 먹이시는 나름 vip 였다. 너무 자주 오시다 보니 처음처럼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는 손님들하고 대화하면서 분위기도 잘 살려주시고, 가끔 손님 없을 때 본인 옛날이야기, 옛날에 키웠던 개 이야기, 아들 손주 이야기 듣고 있으면 재미도 있었다. 특히나 욕을 반 섞어가면서 하는 그 말투가 너무나 중독성이 있었다. 아 이래서 욕쟁이 할머니 집이 장사가 잘되는구나...     

 

 그러던 어느 날. 매주 오시던 할머님이 조금 뜸해지시더니, 3개월이 넘게 오시지 않았다. 다들 고령인 할머님이 조금씩 걱정이 되던 찰나, 원장님께서 한통의 전화를 받으셨고, 한참의 통화 후 원장님께서 무거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바다 할머님이 몸이 많이 안 좋으셔서, 입원을 하셔야 하는데, 바다 때문에 입원도 못하고 집에서 버티고 계시단다. 이대로 병원 들어가면 자기는 마지막일 것 같다고, 바다를 혹시나 좋은 곳에 보낼 곳만 마련해주면, 앞으로 키우는데 드는 비용까지 자기가 다 지불하신다고 나한테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시네.. “

 자식, 손자들은 전부 외국에 나가 있고, 바다가 전부였던 할머님. 본인이 몸이 안 좋아지자 바다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것이다. 원래는 절대 그런 부탁 안 들어주시는 원장님도 이번에는 지인들, 손님들에게 모두 연락 돌려, 다행히 좋은 분을 소개해드렸고, 원장님이 직접 바다를 받아서 그분들 게 전해드렸다. 그리고 할머님은 다음날 바로 입원을 하셨고, 정말 바다 때문에 버티신 건지 겨우 3일 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는 얼마 후, 할머님의 도우미 아주머니 편으로 병원으로 상당히 큰돈이 전해졌다. 앞으로 바다 평생 동안 접종과 진료비로 써달라는 말과 함께.. 원장님께서는 몇 번 사양했지만, 꼭 그렇게만 쓰기로 약속하고 받으셨다.  

 

 그리고 다음날, 바다를 새로 입양받으신 보호자분께서 바다를 데리고 병원에 내원하셨다. 처음 온날은 그렇게 잘 먹던 녀석이 갑자기 잘 안 먹기 시작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설마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그 많은 사연들처럼 바다도 할머님이 돌아가신 걸 알고 안 먹기야 했겠냐만은, 왠지 마음이 조금 찡했다. 그날 저녁 원장님과 조문을 가면서 보호자분께 양해를 구하고 바다를 데리고 갔다. 물론 안까지 데리고 가진 못했지만 마지막 인사라도 하기 위해 원장님과 내가 번갈아가면서 한 명씩 들어갔고, 바다는 장례식장 밖에서 할머님과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반가운 전화가 왔다. 바다가 다시 잘 먹는다는...     


 김순금 할머님과 바다가 함께 한 시간은 5년도 채 되진 않았지만. 아마 가장 먼저 김순금 할머님을 다시 만나는 것도 바다일 것이다. 하늘 저편 어디 만만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특유의 욕을 섞어가며 아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귀찮게 바다 자랑하면서 그리워하고 계실 할머님. 바다가 병원에 오는 날은, 그분이 늘 앉아 계시던 그 의자에서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론 욕이 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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