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하는 부모로서는 비오는 날이 제일 걱정이었다. 내가 출근하는 곳은 아이의 학교와는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만약 아이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다면, 아무리 급하게 가도 한 시간 뒤에나 도착한다. 물론 위급한 일이라면 비교적 가까운 데 사시는 할머니가 도와주실 것이다. 하지만 장마나 폭풍우도 아닌 부슬부슬 이슬비가 내리는 데 연로하신 할머니가 오가기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나 어른에게 우산을 빌리는 일은 아이의 성격상 어림없는 일이었다.
아예 3월 첫날부터 아이 가방속에 초경량 우산을 넣어두었다. 무겁기도 할테지만, 차마 우산을 뺄 수가 없었다. 학교가기 전 날 아이와 가방 속을 함께 정리했다. 우산이 늘 가방 속에 있을 거라고 말해주니, 아이가 쓰윽 웃었다. 비가 와도 걱정없을 것이라는 별 것 없는 위안이 아이에게는 필요했다.솔직히 말하면 비가 오더라도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준비물이 엄마에게 더 필요했다. 비 내리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올 수 없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비처럼 내리는 난처함과 곤란함 속에서 아이가 주저하지 않았으면 했다.비가 아침부터 밤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는 접히지 않는 투명 비닐 우산을 챙겨 보냈다. 젖은 채로 우산통에 넣어두는 것이 보관이 제일 쉬웠다. 또, 하교할 때도 비가 올테니 잊지않고 챙기기도 좋았다. 초경량 접이식 우산은 그야말로 예상치 못했던 비를 만난 날 쓰였다.
학교 1층 현관에서 학원차를 타는 곳까지 걸어서 5분, 첫 학원에서 다음 학원까지 걸어가는데 3분. 짧다면 짧지만 머리카락이 젖고 옷이 축축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1학년 1년 동안 아이는 우산을 3번 써먹었다. 1년 내내 가방속에 우산이 들어있었던 것 치고는 짧은 숫자일 수 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우산이 없어서 초조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다. 담임선생님께 우산 빌려달라고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아이 대신에 담임 선생님께 우산 좀 빌려달라고 부탁 전화를 하는 일도 없었다. 비가 온 날에도 아이는 의연하게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 왔다. 가방 속 비상금보다도, 손수건보다도, 초경량 우산이 제일 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