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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에는 끝이 있다 Mar 22. 2023

뭐 할라고 이러고 있나 싶은 날이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의미가 없을까봐
시간낭비 일까봐
괜히 무기력해지는 날이 있다.


 

  테트리스 마지막 단계를 깨는 듯한 일상이었다. 하늘에서 수도없이 떨어지는 블럭처럼 쏟아지는 일처리에 정신없는 나날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수십가지인데,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은 많아야 두 세가지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일처리들이 자꾸 쏟아졌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쪼개가며 일을 했다. 밤에 할일들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그 다음 날 낮에 그나마 일을 진전시킬 수 있는 나날이 이어졌다.


  몸이 지치니 마음도 지친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하는데 키보드를 붙잡고 있는 내 손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뭐하자고 이러고 있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일 많이 한다고 누가 돈이라도 더 얹어주나.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문득 주말에 마주친 노란 수선화가 생각이 났다. 캠핑장에서 우연히 아침 산책으로 맞은편에 보이는 언덕에 갔는데, 해가 잘 드는 양지바른 언덕 위로 올라서자 병아리처럼 산뜻한 노란 수선화가 보였다. 별 다른 기대 없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그저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나선 것 뿐이었는데, 행운처럼 수선화를 만났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도 행운같은 수선화를 기대하기로 했다. 그저 한 발. 머릿 속이 복잡하고 끝날 것 같지 않지만, 그냥 한 발 걷자. 불편한 마음은 마음대로 두고 그냥 한 걸음만. 걷다 보니 수선화를 만난 것처럼, 하나 하나 조금씩 일을 처리하다 보면, 노란 수선화같은 소소한 즐거움도 따르지 않을까.


 수선화가 안나타나도 그건 그거대로 괜찮을 것 같다. 산책길에서 아이들과 소소하게 깔깔대고 그림자 놀이를 하며 수선화 없이도 즐거웠던 것처럼, 그냥 한 걸음씩 걸어보는 거다.


  너무 일하기 싫을 때는 딱 한 걸음만큼만 일하자. 일주일 내내 일하기 싫었더라도 적어도 일곱걸음 만큼은 일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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