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 마지막 단계를 깨는 듯한 일상이었다. 하늘에서 수도없이 떨어지는 블럭처럼 쏟아지는 일처리에 정신없는 나날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수십가지인데,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은 많아야 두 세가지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일처리들이 자꾸 쏟아졌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쪼개가며 일을 했다. 밤에 할일들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그 다음 날 낮에 그나마 일을 진전시킬 수 있는 나날이 이어졌다.
몸이 지치니 마음도 지친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하는데 키보드를 붙잡고 있는 내 손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뭐하자고 이러고 있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일 많이 한다고 누가 돈이라도 더 얹어주나.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문득 주말에 마주친 노란 수선화가 생각이 났다. 캠핑장에서 우연히 아침 산책으로 맞은편에 보이는 언덕에 갔는데, 해가 잘 드는 양지바른 언덕 위로 올라서자 병아리처럼 산뜻한 노란 수선화가 보였다. 별 다른 기대 없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그저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나선 것 뿐이었는데, 행운처럼 수선화를 만났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도 행운같은 수선화를 기대하기로 했다. 그저 한 발. 머릿 속이 복잡하고 끝날 것 같지 않지만, 그냥 한 발 걷자. 불편한 마음은 마음대로 두고 그냥 한 걸음만. 걷다 보니 수선화를 만난 것처럼, 하나 하나 조금씩 일을 처리하다 보면, 노란 수선화같은 소소한 즐거움도 따르지 않을까.
수선화가 안나타나도 그건 그거대로 괜찮을 것 같다. 산책길에서 아이들과 소소하게 깔깔대고 그림자 놀이를 하며 수선화 없이도 즐거웠던 것처럼, 그냥 한 걸음씩 걸어보는 거다.
너무 일하기 싫을 때는 딱 한 걸음만큼만 일하자. 일주일 내내 일하기 싫었더라도 적어도 일곱걸음 만큼은 일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