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을 속삭여 본다. 때로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을 먹게 하고, 때로는 나 스스로를 위로하도록 도와준다. 때로는 체념 섞인 한숨에 묻혀 내뱉기도 하고, 때로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가벼운 웃음과 함께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던 이 말을 지금은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내 아이가 인생 속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말
하루는 지블리가 스스로 우유를 따르고 싶어 했다. 우유팩을 급하게 기울이다가 컵이 아닌 곳에 우유를 엎질렀다. 자기 자신의 실패를 아직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섯살 지블리는 울상이 되었다. 옆에서 여덟살 형아가 호들갑을 떨면서 어떡하냐고 소리를 치니 지블리의 표정은 더더욱 굳어졌다.
"그럴 수 있지, 괜찮아.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야. 다행히 식탁 위에 흘려서 정리도 쉽겠다. 화장지 가져오자."
사실 사고를 친 이후에는 엄마 입장에서도 뒷처리 걱정에 할 말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나 스스로를 위한 말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실수 할수도 있지. 그럴 수 있지. 같이 치우면 돼, 괜찮아."
아이들이 실수를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말해준다. 아이들이 실수를 해 버린 자기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실수에 매몰되어 실수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수를 하고 나서 뒷정리를 하고 나면 다시 괜찮아 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괜찮아."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키워주는 말
누구나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생각해준답시고 쉽게 던지는 말에 누군가는 쉽게 상처를 받는다. 어쨌든 그 사람 잘못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쉽게 참견하거나 평가내리는 자체가 잘못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잘못은 잘못인 거고, 중요한 건 내 자신이 그 잘못에 치여 너무 상처받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 자체가 밉고 이해가 안가면 내 마음 속 상처는 더 커진다.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하되, 그 사람 전체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 상처받는 것은 나 자신일 수 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그럴 수 있지. 그 사람도 이번 생이 처음이라. 쉽게 생각해서 그렇게 말 할 수도 있지. 다만,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돼. 내 생각을 잘 전달하면 돼'
한번은 아이들과 키즈카페에 갔다. 정블리는 키즈카페에 가면 항상 낚시를 해서 통을 가득 채우는 것을 좋아한다. 물고기로 고기통을 꽉 채우려면 30-40분은 족히 걸린다. 정블리가 절반쯤 물고기통을 채웠을 때,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기가 왔다. 아직 내것 네것 구분이 잘 안될 것 같은 그런 나이의 아이였다. 정블리는 즉시 자기 물고기통을 지키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는 낚싯대를 잡고 낚시를 하랴, 왼 손으로는 옆구리에 물고기통을 잡고 지키랴 바빴다. 엄마 보기에는 귀엽기만 한 모습이었지만, 정블리는 눈으로 나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여기는 키즈카페이고 사실은 모든 장난감이 모두의 장난감이다.
"정블리, 아기가 형아가 잡은 물고기들이 멋져서 만져보고 싶나봐. 아기는 그럴 수 있어. 아기는 아직 어려서 호기심이 많거든. 정블리도 저만할 때 형아들 물고기통 만지고 다녔어. 그때 너그럽게 물고기 만지게 해 준 형아도 있었고, 물고기통 손도 못대게 화내는 형아들도 있었어. 정블리는 어떤 형아가 되고 싶어? 애기가 어떤 형아를 더 멋지다고 생각할까?"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각자의 가치를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나와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꼭 틀리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럴수 있지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말이다.
나를 토닥토닥 위로하는 말
어른이지만 여전히 상처받기도, 상처를 주기도 하는 나에게도 이 말은 몹시 유용하다. 다른 사람들의 악의없는 못된 말에 상처 받았을 때, 나 스스로에게 속삭여준다.
"그럴 수 있지. 저 사람도 이번생이 처음이라. 저 사람도 아직 서툰 어른이라. 몰라서 그러는 걸거야. 너무 상처받지 말자."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잘못한 상대방을 응징하고 욕해야만 내 속이 풀릴 것 같은데, 오히려 내 속은 더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 사람도 서툴러서 그럴 수 있지...하고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문제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게 되면서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럴 수 있다는 말이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만, 내 마음 속 환풍기 정도는 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