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바 May 07. 2022

친절하라, 영화 <원더>

20대 나의 덕질은 영화였다. 최신 영화부터 고전까지 가리지 않았고 찾아봤다. 내가 지금 기억하는 영화는 얼마나 될까. 충격적이게도 고작 인상적인 장면 몇 조각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내가 본 영화가 무슨 내용이었고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수동적으로 보기만 하고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배움은 똑같다. 인풋만 받아들이면 남지 않는다.


찬찬히 들여다보자. 곱씹고 질문하고 다시 생각 해보자. 책을 슬로리딩 하듯이 영화도 워칭을 한 후 천천히 읽어내는 작업을 해야한다. 아웃풋으로 글을 써내자. 매달 2편의 영화를 보고 그 속에서 나의 최대 관심사인 공동체적 요소에 대한 글을 써보자.


프로젝트 <찬찬히 들여다보다>, 첫 번째 글을 지금 시작한다.



비슷해보이지만 다르고 달라보이지만 비슷한

<원더 Wonder, 2017>,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5학년 어기 풀먼의 이야기이다.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어떨까.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분명 지독하게 고독할 거라 예상한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종종 “분위기가 비슷하시네요”라는 말을 듣는다.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민낯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모이면 '인간은 비슷하게 생겼구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이에 얼굴색이 다른 사람이 한 명 끼어 있으면 눈에 확 띄면서 ‘다르다’라고 직관적으로 느낀다. 어기가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 다름을 혐오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생김새나 외적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쉽게 다가간다. 잘 통할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예상보다 사람들은 많이 다르다. 반면 나와 다를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의외로 금방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어기와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안다. 그가 외모는 자신과 다르지만 내면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투쉬맨 교장의 말따라 '어기의 외모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한다. 외모의 동질감보다는 내면의 공감이다.



오만과 친절

학교 첫날 어기는 친구들의 괴롭힘에 상처를 받고 집에 와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어기의 엄마 이사벨은 그런 아들과 단둘이 마주한다. 어기는 눈물을 흘리며 입을 뗀다.


“왜 난 이렇게 못생겼어?”
“넌 못생기지 않았어”
“내 엄마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잖아”
(…)
“엄마 생각이니까 제일 중요한거야.
널 제일 잘 아니까”


어기와 그의 엄마 이사벨

    

타인이 나를 안다고 단언하는 말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부모가 자식을 ‘다 안다’ 생각할 때 일어난다. 이때 부모의 마음은 ‘오만’이다. 어기를 괴롭힌 아이들의 행동도 오만이었다. ‘내가 널 아는데, 너보다 내가 우월하다.’인 것이다. 엄마는 상처입은 어기를 ‘친절’의 말로 치료한다. ‘내가 널 아는데, 넌 아주 소중한 아이야.’라고 위로한다.



모두가 특별하다

엄마는 어기가 학교에 가자 미뤄뒀던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한다. 아빠는 엄마를 지지해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한다.누나 비아는 어기로 인해 가족 내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친구 관계에도 어려움을 느끼지만 여전히 어기와 가족을 사랑하며 성장해나간다. 잭은 어린 나이에 어쩌면 생전처음,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시련을 전후로 변화를 겪는다. 영화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더 들려줌으로써 그들을 조연보다는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모두가 특별하다는 메세지를 적극적으로 전달한다.


“사실 난 평범한 애가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의 생각을 안다면 깨닫게 될거다.
평범한 사람은 없다는 걸.”



기다림이 필요한 관계

비아의 친구 미란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에 빠진다. 무기력한 어머니와 무관심한 아버지는 그녀를 힘들게 한다. 사랑이 필요했던 그녀는 친구 비아의 삶을 훔친다. 안면기형이 있는 어기를 자신의 동생이라 거짓말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진실되지 못한 행동에 죄책감을 느낀 미란다는 비아를 피하고, 미란다는 여전히 비아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행동과 혼란스러운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보인다.


둘도없는 절친이었던 비아는 당황스럽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자신을 피하는 미란다의 행동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때 다행스럽게도 저스틴이 등장한다. 그는 비아의 관심을 미란다에서 자신에게로 집중시킨다. 저스틴의 등장이 미란다와 비아의 갈등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관계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화시키고 움직이는 속도가 다르다. 미란다는 시간이 필요했다. 의도한건 아니지만 비아와 저스틴의 연애가 미란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다. 그 사이에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깨닫고 행동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행동에 화가 날 때면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남편이 곁에 있다면 그동안 아이와 놀아주며 내게 필요한 시간을 벌어준다. 아이들과 떨어져서 내 감정을 추스린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판단하는 시간이 내게도 필요하다. 내가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런 후에 아이와 이야기 나누면 후회할 일이 거의 없다.


만일 비아가 미란다에게 다짜고짜 “도대체 왜 이러는데?”라고 따지거나 “넌 정말 제멋대로야”하며 비난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미란다


행동이 아닌 존재를 인정하라

어기와 잭은 7학년으로 보이는 형들에게 공격받는다. 어기는 물러서지 않았고 마침 등장한 같은 반 아이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망친다. 이때 어기를 도와준 이들은 한때 어기를 괴롭혔던 아이들이었다. 그 중 한 아이가 어기에게 "배짱 좋더라"라고 말하며 어기의 어깨를 툭 친다. 인정한 것이다. 어기는 입을 앙다물더니 울컥하며 홀로 강가로 걸어 나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인정'에 대해 심리학자 아들러는 ‘타인의 인정을 바라지 마라.’고 말했다. 여기서는 행동을 말한 것인데, 인정을 바라고 타인의 기대에 맞춰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어기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인정을 바라지 않았고, 그저 자기답게 행동했다. 어기는 행동을 인정받지 않았다. 자신을 부정하던 친구에게서 존재를 인정받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정받고 싶다. 행동이 아닌 존재만으로 인정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꾸미지 않은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 모습들이 너무나 다양해서 잘 어우러지는데는 많은 시간과 품이 들겠지만,

결국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장,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하라'. 한글 자막만 봤을 때 나는 '힘겨운 싸움을 하는 사람'은 어기 혹은 어기와 같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르게 번역한 것이 마음에 더 와닿았다.


'친절하라.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 문장만큼 매끄럽진 않지만 영화의 메세지를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 우리는 모두 특별하며, 똑같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니 모두가 모두에게 친절하라. 그럴 때에 서로 '다른' 우리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리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