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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바 Oct 28. 2018

우유 대신 아몬드 밀크

찬장 안에 몇 달 전에 사두었던 생아몬드가 있었나 보다. 모모가 뒤지기 놀이를 하다가 발견했는지 바닥에 내팽겨 쳐 두었다. 하필이면 추워진 날씨에 바닥에 불을 올려놨었는데, 아이코 생아몬드 봉지가 살짝 따땃한 게 걱정이 됐다. 바로 뜯어 볼에 담고 물을 가득 부어 놓았다.
 

엄마는 내 키가 큰 이유가 다 우유 덕분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우유를 하루에 한 통 씩 마셨다나. 거기다 아빠는 밥에 우유를 말아먹는 신기한 식성을 가진 분이셨다. 남들 햄버거에 콜라 마실 때 나는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우유 사랑은 꽤 대단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아몬드 밀크를 먹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우유가 건강한 식품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쳐서였다.


마트에는 볶은 아몬드만 팔아서 생아몬드는 인터넷에서 주문해야 했다. 채식주의자들이 우유 대신으로 견과 우유를 먹는다는데 시중에 파는 건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서 사기가 꺼려졌다. 그래서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주문했는데 그게 벌써 몇 달 전이 되었다. 볶은 게 아니니까 산화는 덜 되지 않았을까, 신선도보다 산화가 더 무서운 거 아닐까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물에 불린 아몬드를 곱게 갈아 꾹꾹 짜내면 우유 색깔과 거의 똑같다. 한 모금 꿀꺽. 나는 고소하다 말하고 남편은 물맛이라며 고개를 휘휘 젓는다.

우유 대용품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우유맛은 아니다. 누군가 우유를 먹지 않기로 했는데 정말 간절히 먹고 싶을 때, 그때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근데 그럴 때는 그냥 우유 한 잔 마시면 안 되는 건가. 나는 엄격한 식생활은 못할 것 같다.

아가베 시럽을 조금 뿌렸다. 우유가 빠졌으니 시럽은 조금 관대하게 뿌려도 되겠지, 왠지 위안이 돼서 많이 넣었나 보다. 달달해졌다.


나는 꾸준히 직장을 다니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회사에 가기 싫어!’라고 말하는 순간, ‘하! 난 그래서 그만뒀지!’라고 생각하며 어깨가 올라간다.

물론 하기 싫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도 능력이고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안다. 그래도 상대방이 못하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데 위안을 얻는 걸까, 슬프지만 뭐 그런 거 같다.


나는 언제나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다. 일부러 다른 걸 찾는 건 아닌데 어째 매번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가게 된다.

산골행도 그중 하나인데, 서울에서의 삶이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는 항상 아팠고 걱정했고 불안했다.

그래서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주거지를 선택하는 일이 아몬드 밀크를 만들어 먹는 것처럼 그냥 한번 해볼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다는 건 알지만 처음에 산골행을 결정했을 때 우리 부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살아보고, 아니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도 좋다.


다행히 우리는 우리의 아몬드 밀크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아몬드 밀크처럼  맛이 다소 밍밍하고 생소하다. 그런데 거기에 시럽도 조금 뿌리고 미숫가루도  먹고 라떼도 만들어먹는 재미에 우리는 점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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