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게 앞에 있는 황성공원을 홀로 걸었습니다. 새벽부터 가게에 나와서 음식 준비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숨 돌리던 참이었습니다. 걷다가 빈 벤치가 보여 앉았습니다.
가만히 앉아 가을바람을 맞았습니다. 요즘 바람은 잠시 맞으면 시원한 듯싶지만 이내 한기가 들어버려 방심하고 있지를 못하겠습니다. 손 끝이 차가워지면 언제든 일어나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돌연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런 날씨쯤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겉옷 벗고 풍욕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몸을 사려서 그런 걸까요. 사람이 쪼잔해집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오늘 나 잘 살고 있나, 너무 일만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들이 마구마구 모여듭니다.
지난 1년을 지내며 제가 사는 방식이 자잘하게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없었던 일을 해야 할 이유,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생겼지요. 새로운 태도와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신나고 흥미롭기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에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기도 했습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습니다. 문득 어느 유튜브 강연에서 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라는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지금이다 생각해 얼른 눈을 감았습니다. 저는 지금 행복하고 싶으니까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뭘까? 눈을 감고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혜린과 영감 그리고 저 소바.
가게에서 함께 일한 지 반년쯤 된 혜린은 평소에 편안하게 손님을 맞이합니다. 그것이 그가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릴 적부터 부모님 따라 장사를 배운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하면 힘을 빼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을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종종 그가 만난 손님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는데요. 최근에 들은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한 중년의 커플 손님이 소문 듣고 왔다며 이웃 지역에서 빵집을 찾아오셨어요. 빵을 고르고 커피를 시켜 두 분이서 담소를 나누고 혜린과도 이야기를 나누셨지요. 곧 그분들은 전화로 근처에 사는 친구를 초대했어요. 빵과 커피를 대접했지요. 초대된 친구분이 그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내 생각났다며 불러줘서 고맙다.”
혜린은 그 장면을 제게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손님들도 멋쟁이시다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지점에 감격하는 혜린의 시선이 다정하다고 느꼈습니다.
영감은 제가 아는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입니다. 제시간에 약속한 양의 빵을 구워내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집에 가면 빨래도 그렇게 열심히 합니다.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건조기 앞에 앉아서 또 한참을 옷을 개고 수건을 정리합니다. 그가 말하길 사실 그 시간에 혼자 있을 수 있어서 그렇게 열심히 한다네요. 그렇지만 혼자 있고 싶은 시간에 조차 집안일을 한다니 나랑은 참 다르네, 대단하다 싶었지요.
이런 멋진 사람들과 함께 일해서 행복하냐고요? 물론이지요. 그렇지만 저를 행복하게 하는 건 그들이 멋진 사람들이어서가 아니에요. 영감이 성실한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혜린이 다정한 사람이어서도 아닙니다.
저는 두 사람 덕분에 제게 오는 기회가 많아져서 행복합니다. 혜린의 아이가 아플 때 그가 아이를 돌볼 수 있게 일을 대신할 수 있는 기회. 혜린이 플로리스트 수업을 듣고 싶은데 수업일이 근무일과 겹칠 때, 배우고 오라며 지지해 줄 수 있는 기회. 그가 일하는 동안 그의 변화하는 일상과 삶의 과제들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조정하는 겁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안 될 때는 꽤나 불편하니까요. 가뜩이나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잖아요.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하고, 꿈을 키워가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지지해 주고 응원해주고 싶으니까 제게 그럴 기회가 많이 오면 기쁩니다.
또 제가 행복한 이유는 영감의 짐을 나눠 지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영감은 7년간 줄곧 혼자 일했습니다. 혼자 빵 만들고, 손님맞이하고, 돈 관리도 했지요. 힘들다는 말도 못 했을 겁니다. 그런 소리 하면 안 되는 가장의 책임을 꽉 붙든 사람이니까요. 제가 그의 짐을 나눠 갖기로, 이제부터는 내가 다른 일들을 맡을 테니 당신은 빵만 만드시라 말했을 때 7년 만에 그가 입을 떼더군요. 그동안 무척 외로웠다고요.
매 순간 우리에게 누군가를 사랑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연인을 만났을 때, 아이를 키울 때, 그리고 일을 할 때도요. 사람이 만나고 부대끼는 모든 곳에는 그 기회가 있습니다. 못 본 척하지 않고 흘러가버리기 전에 꼭 붙잡으면 바로 그곳에 저의 행복이 있었습니다. 그렇담 정말이네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