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이었다. 바람은 차갑고, 하늘엔 별 하나 없이 어두웠다. 나는 손에 쥔 편지를 다시 펼쳐 들여다보았다.
“청림으로 가라. 그곳에 모든 해답이 있다.”
문장은 짧고 단호했다. 글씨는 누군가 급하게 끼적였는지 삐뚤삐뚤했고, 종이 모퉁이엔 희미한 얼룩이 번져 있었다. 눈물인지, 물인지 알 수 없는 흔적이었다.
내 안에 오래도록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꿈틀댔다. 나는 늘 내 마음속 깊은 동굴 속에 그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였다. 나조차도. 하지만 그날 밤, 토끼는 처음으로 나를 향해 속삭였다.
“네가 원했던 해답이 있지. 청림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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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림은 멀고 낯선 곳이었다. 나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발길을 옮겼다. 거리를 걷고, 버스를 타고,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신경 쓰지 않았다. 손에 든 종이 한 장이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길은 점점 좁아졌다. 나무들이 키를 높이며 어깨를 겹겹이 포갰다. 그 속에 숨겨진 작은 오두막이 나타났다. 문 앞에 서자, 마음속 토끼가 다시 속삭였다.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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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안은 어두웠다. 한쪽에는 작은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크고 작은 병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무언가를 끓이는 냄새가 났다. 한 여인이 나를 맞았다. 눈동자는 깊고, 목소리는 낮았다.
“찾아왔구나.” 그녀가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대신 손에 든 편지를 내밀었다. 그녀는 그 종이를 받아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병 하나를 책상에서 집어 들었다.
“네가 찾던 해답은 이 안에 있다. 하지만 그냥 받을 수는 없어. 네 눈물, 네 땀, 그리고 네 피를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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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오랫동안 답을 찾아 헤맸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을 떼어내고, 손바닥에서 땀 한 방울을 받아냈다. 마지막으로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얻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의 병에 섞고, 조용히 흔들었다. 병 안에서 희미한 빛이 났다.
“이제 이걸 마셔. 하지만 기억해. 네가 무엇을 얻든, 그것은 네 안의 토끼와 함께 만들어진 것이야. 네가 원하지 않는 진실일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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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을 받아들고 조용히 마셨다. 처음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토끼가 내 안에서 커다란 날갯짓을 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청림이란, 밖의 어딘가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 내 안의 깊은 곳이었다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